엄만동 청주성광교회 목사

한 애꾸눈 장군이 있었다. 장군은 죽기 전에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서 이름난 화가들을 불러 부탁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떤 화가는 애꾸눈 그대로 그렸고, 어떤 화가는 장군의 속마음을 짐작해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다. 장군은 애꾸눈의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화를 냈다. 고민하고 있는 장군 앞에 어느 이름 없는 화가가 초상화를 그려보겠다고 나타났다. 장군은 미심쩍었으나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고 매우 흡족해 했다. 그 화가는 장군의 성한 눈 쪽의 옆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의술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여, 제 병을 낫게만 해 주신다면 집을 팔아서 바치겠습니다”라고 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깨끗하게 치료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을 팔아서 바치려니 너무 아까웠다. 궁리 끝에 집을 처분한다는 광고를 이렇게 냈다. “대지 200평, 건평 60평의 집의 대금은 10만원. 단,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함께 구입해야 함. 그 대금은 5억” 약속대로 집을 판 돈 10만원은 하나님께 바치고, 은행나무를 판 돈 5억은 부자가 챙겼다.

화가와 부자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다가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화가는 지혜를 사용해 애꾸눈 장군의 옆모습을 그려 장군을 만족하게 하였고, 부자는 지혜를 사용해 약속을 지키면서 재산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똑같이 지혜를 사용하였지만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화가는 지혜를 통해 자신도 상대방도 만족을 누렸지만 부자는 지혜를 사용해 양심과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의 이기심만 채웠던 것이다. 지혜도 좋게 쓰여야 아름다운 것이다.

성경에는 지혜를 말하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희로애락이 바뀌게 된다.

미국의 헌팅턴 프레스(Huntin gton Herald Press) 신문사 건물입구에 3개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위에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지구본 밑에 깔려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동상 밑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지구본은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구본을 껴안고 있는 모습은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며 지구본 위에 거만하게 서 있는 모습은 시간의 귀중함을 비웃는 것이고 지구본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은 시간을 무시하다 실패의 나락에 떨어져 고통당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헌팅턴 프레스 신문의 편집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신문사는 항상 흐르는 시간 속에서 최고의 신문을 만들고자 이 동상을 세웠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가? 시간의 귀중함을 비웃고 무시하는 사람인가? 시간을 무시하다 실패해 후회하고 있는 사람인가? 시간은 소중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짧은 순간의 시간이라도 함부로 사용한다. 지나간 내일을 붙잡으려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라면 그런 지혜가 성공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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