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 청주한방병원 한방내과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녀의 자녀까지 맡아 키워주는 이른바 ‘황혼 육아’ 여부도 주요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여성의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인한 파급 효과로 황혼 육아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9년 보건복지부 아동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의 0~3세 영·유아의 70%, 미취학 아동의 35%는 최소 낮 동안 조부모·외조부모가 돌보고 있습니다.

국내 손자녀 양육 조모의 평균 나이는 62.5세로, 대부분 노령기에 해당하기에 누적된 건강 위험 요소가 질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허리, 무릎의 관절통이 새로 생기거나 이미 있던 관절통이 악화되고, 수면장애, 우울증,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위험이 높아지거나 악화될 위험성이 경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풍이라고도 하는 뇌졸중은 어떠할까요?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들이 더 위험할까요?

황혼 육아의 주된 주체인 조모의 대부분은 고령이라는 조절 불가능한 뇌졸중 위험인자를 이미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황혼 육아는 뇌졸중의 위험을 더욱 증가시켰을까요? 이제부터 대전대학교 한방내과, 심·뇌혈관센터에서 조사한 결과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황혼 육아와 뇌졸중 발병과의 상관 관계를 살펴보기 2006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대전대학교 부속 대전한방병원에 입원한 뇌졸중 환자 323명 및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내원한 195명을 대조군으로 해, 뇌졸중 환자군의 발병전 비양육 및 양육 조모의 비율, 정상군의 비양육 및 양육 조모의 비율을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 뇌졸중 환자군에서 발병전에 손자녀 육아를 담당하고 있던 비율이 정상군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황혼기에 더 높은 비율로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그룹에서 뇌졸중 발병률이 낮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조금 이외의 결과라고 느껴지시나요? 분명 황혼 육아는 노년기에 신체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지만, 황혼 육아가 심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관한 보고도 많습니다.

손자를 양육하고 있는 할머니들께서는 체력적 능력 감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감정 상태가 일반인과 같거나 오히려 더 낫다고 느끼고 계셨고, 손자녀를 양육함으로써 자녀와는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돼 노년기의 정서적, 심리적인 소외감을 잊을 수 있고, 손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강한 정서적인 유대(bonding)를 경험하게 됩니다.

한의학적으로 뇌졸중 발병의 위험 요인 중 정서와 관련된 측면을 살펴보면 五志(오지)가 과극하면 內風(내풍)이 동해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明代(명대)의 장중경은 경악전서에서 뇌졸중은 평소에 신중하지 못하거나 七情內傷(칠정내상) 酒色過度(주색과도)로 五臟(오장)의 眞陰(진음)을 상한 소치라 해서 평소 정서 상태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황혼 육아로 애쓰시는 부모님의 건강이 염려되신다면 무엇보다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그 과정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충분한 정서적 사회적 지지가 뒷받침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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