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난 깊은 상처는 그 상처의 강을 건너 저 건너편의 강기슭으로 가기까지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 아이의 제 아비를 향한 분노가 성난 짐승처럼 막무가내로 손을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알 수 없다. 소년이 안고 있는 절망은 세상 어떠한 것으로도 치유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만나 간절히 기대고 싶어 하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은 이미 그의 곁에 없다. 깊은 슬픔과 자책만이 다 성장하지도 않은 그의 어깨를 한없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아이의 어미는 어느날 어린 삼남매를 두고 궁핍한 살림에 약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한창 부모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누구의 손길의 보살핌도 없이 방치된채 거리의 아이들로 살다가 소년원까지 갔다 왔다.

아내의 죽음으로 비탄 속 아비는 제대로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엇나기만 했던 두 아들을 모진 매로 훈육을 했을 뿐이다.

소년의 기억속 아비는 그저 매질만 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들이 매를 피해 기대고 숨을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상처를 사랑의 손으로 감싸줄 어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문제 학생으로 동급생이나 선생들에게 늘 손가락질을 당했으니 자연 학교는 날마다 숨통이 막혔다. 같이 소년원에 갔다 온 동생은 1년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그는 동생의 죽음을 형으로서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아버지의 경제적 무능과 무지막지한 매질로 자신들이 불행해졌다는 원망으로 세상을 향해 굳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상한 짐승이 돼 방안에서 웅크리고만 있다. 아비의 지난날 잘못된 훈육의 용서를 구함은 화석처럼 굳은 소년의 가슴에 절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소년 또한 절망 속 날마다 자살만 꿈꾸고 있다.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을까하는 조바심으로 아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태울 뿐이다.  

어디를 둘러 봐도 아비와 아들의 관계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 부자는 만나기만 하면 상대방에게 원망의 날카로운 이빨만 보이다 헤어진다.

절망 속 아비와 아들의 용서와 화해는 심리 치료 역할극을 하면서 자연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아비는 고아로 매를 맞고만 자라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서로 역할을 바꿔서 상대의 심리를 이해하면서 두 부자는 그동안의 골 깊은 상처를 내려놓는다. 

결국은 관심과 사랑이다. 상대가 지르는 희미한 비명에도 귀 기울이고 살펴야 하는 세심함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체벌이라도 세상을 향해 지금 막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한 인성에게 평생 씻기지 않을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움을 남기면 안된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한세대를 앞서간 ‘페레’라는 교육자의 숙연한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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