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온돌방은 들판에서 땀 흘리면서 일하고 돌아온 지친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지금으로 말하면 열탕 사우나 격이었고 단열효과 또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토담 벽이 지금의 콘크리트 벽을 능가하였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 고래(古來)의 한지(韓紙)는 충분한 방풍(防風)은 물론이고 초가지붕의 단열효과 또한 지금의 어떤 단열재로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충분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지금처럼 건설장비가 없었던 그 시절에도 지형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다듬질 된 지반에 반석을 설치해 균형 있는 시공방법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만족하게 하였고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몇 십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형태가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는 선진 건축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고 본다.

몇 백 년을 묵묵히 지켜온 고궁(古宮)이나 예술적 감각이 엿보이는 사찰(寺刹)등은 긴 세월에도 나이를 잊은 듯 아직도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생명감을 느낄 수 있고 어디 어느 곳에도 균열이나 이골된 부분은 찾아 볼 수 없고 정교하고 우아한 옛 정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선인들의 거룩한 시공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주거문화는 너무나 과대하고 분수에 넘치는 호화스러운 생활공간이 돼 옛 정서와 고풍은 사라지고 시대의 걸림돌인 빈부(貧富)의 격차를 유발하는 장본인으로 서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순수한 생활공간의 차원을 넘어서고 말았다.

인구가 집중된 도심 곳곳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수많은 아파트가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고층빌딩과 도로변의 주상복합 건물들이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이 가는 길을 막는 무서운 거인(巨人)으로 버티고 있으며 이들이 가져다주는 삶의 터전은 이웃이 없는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

삶의 기본이 돼야 할 생활공간이 과시적인 사치성 물질로 변하면서 삭막한 사회풍토를 조성하게 된다면 이것은 삶의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으로 보기에는 민망스럽고 발전하는 주거문화에도 뜻 있는 찬사를 보낼 수 없다.

우리의 주거 공간은 순수한 삶의 보금자리로 어떠한 대가와 이유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며 과시적인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주거환경에서 오는 빈부(貧富)의 갈등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될 주거공간이 돈과 연계돼 사치성 소유물이 된다면 이것은 이질적인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으로 이는 삶의 기본인 주(住)를 벗어난 잘못 가는 변질된 주거문화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인간의 생활수단이 모두가 돈과 연계되는 세상이 되고 보니 순수한 삶의 진리는 점점 사라지고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삶의 가치가 오염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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