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지역 골골이 마을 많아
산비탈에 점처럼 붙은 집들 눈길
간드록 떠난길 도중 만난 마을서
네팔 사람들의 생활모습 엿보여

날씨는 쾌청하다. 가시거리도 멀다. 히운출리와 마차푸차레 사이로 안나푸르나Ⅰ봉(8천91m)도 보인다.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다. 그러나 아직도 사흘은 꼬박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발걸음은 무거워도 마음만은 날아갈 듯 가볍다.

히말라야 호텔을 나서니 곧바로 돌계단이다. 그러나 경사도는 심하지 않다. 아이들의 등교 시간인가보다. 좁은 골목길이 왁자지껄하다. 먼저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이 수줍어하면서도 인사를 잘 한다. 그 모습을 보니 힘겨움이 덜어진다. 어제처럼 힘들지는 않다.

“선생님들, 오늘이 제일 힘드실 거예요. 오늘 하루만 고생하면 내일부터는 그리 힘들지 않을 겁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으며 만난 한국 청년이었다. 인상 좋고 호감이 가는 젊은이였다. 그는 ABC까지 갔다가 하산 중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신은 이제 필요 없다며 고산병 예방약까지 우리에게 주며 오늘 코스의 난이도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청년의 말처럼 촘롱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어제처럼 줄곧 오르막길이 아니라 산허리를 타고 걷는 숲 속 길이다. 이런 길이라면 종일이라도 걸을만한데, 아마도 청년은 조심해서 산행을 하라는 의미에서 한 말인 듯 싶었다. 그래도 친구는 다리가 많이 불편한지 길가에서 대나무를 꺾어 지팡이를 만들었다. 그때, 티가람이 건너편 산기슭을 가리키는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거대한 산허리를 따라 실처럼 기다랗게 늘어져 있다.

네팔의 히말라야 지역도 우리나라 시골처럼 골골이 마을도 많다. 골짜기를 돌아설 때마다 집들이 나타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마을들은 산자락 아래 언덕이나 평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면 네팔은 급하게 경사진 산비탈에 점처럼 붙어 있다는 것.

멀리서 보면 금방이라도 쓸려버릴 듯 위태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그런 비탈진 곳에도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큰 산에서 뻗어 내려온 수많은 줄기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마을이 있는 그 줄기는 백두산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산들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네팔의 산은 높고 크다. 산에 들수록 눈앞에는 거대한 산들이 다가온다. 이런 대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지극히 미미한 힘없는 존재일 뿐이다. 정말 걸어도 걸어도 산, 산, 산이다. 문득 한하운 시인의 ‘황톳길’이 생각난다. 아픈 몸을 이끌고 태양이 내려쬐는 끝없는 황톳길을 걸어가는 시인의 막막한 모습이 보인다.

발밑에는 여전히 돌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길은 산허리를 타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다 급격한 오르막이 나타나곤 한다. 올라가기만 했던 어제의 가파른 계단에 비하면 오늘은 양반이다.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어도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간드록을 떠나 길을 걷는 도중에 서너개의 마을을 지났다. 그곳에서 네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일부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노인이 개울가에서 망치로 돌을 잘게 부수고 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해 다가갔다. 노인 주변에는 커다란 해머와 작은 망치들, 깨놓은 잔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도대체 저 돌을 어디에 쓰려고 깨는 것일까?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각각 떠들어대며 머쓱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궁금증은 한참만에야 풀렸다.

노인이 개울 건너 언덕 너머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수풀만 보일 뿐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우리가 직접 개울을 건너 언덕을 올라 찾아가보니 집을 짓고 있었다. 채 열 평도 되지 않는 집을 짓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보자기로 흙을 나르고, 힘을 쓰는 장년들은 구들장 같은 넓적한 돌을 자르고 다듬어 벽돌을 만들고 있었다. 또 한 무리는 그것들을 가져다 벽을 쌓고 한쪽 편에서는 나무를 다듬어 목재를 만들고 있었다.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짓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 싶었다. 기계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산중이니 모든 것을 사람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탓이리라. 작은 힘이라도 모아야 하니 동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동네 잔치마당이 되는 것이 우리의 옛 전통인 두레와 같아 보였다. 궁벽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에게 의지하는 길 뿐이리라.

다시 한참을 걷다 네팔 아낙들을 만났다. 그녀들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담 너머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러대며 동네가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큰 마을의 장이라도 다녀오는 길인지 목소리는 한껏 높았고, 등에는 한 보따리씩 짐을 메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무척 즐거워하며 동행한 친구의 팔에 매달리며 포즈까지 취해준다. 그것이 계기가 돼 그녀들과 동행하게 됐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그녀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길가 민가로 들어가더니 낫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더니 친구가 짚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의 잔가지들을 말끔하게 다듬어 줬다. 삐쭉삐쭉하게 나온 가지 달린 지팡이가 보기에도 성가셨는가 보다.

그녀들 덕분에 한동안 힘든지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고갯마루 갈림길에서 헤어지며 고마움의 표시로 화장품을 줬다.

그렇게 세시간여를 걸어 우리는 마차푸차레 롯지에 도착했다. 건너편으로 우리가 묵었던 간드록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에서는 규모가 큰 마을인데도 산자락에 붙어있는 마을이 왜소하다.

그 주변으로는 모자이크 같은 계단식 논밭이 산자락 전체에 실처럼 보인다. 논밭의 경계가 마치 갯벌에 나있는 실금들처럼 어지럽다. 이제껏 걸은 거리가 겨우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왔을 뿐이다. 그래도 마차푸차레 롯지에서 보는 설산은 장관이다. 서둘러 촬영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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