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팔로 간다
남벌로 인한 산사태로 매년 사람들 죽어
숙박·식당 장작 사용안하고 친환경 운영
오지마을을 낙원으로 일군 히말라야 딸
마을 외형·네팔 여성 삶의 질 개선 노력

‘하루가 여삼추’가 아니라 한 발이 천근만근이다. 내 몸에 붙어있는 내 다리인데도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바로 머리 위가 간드록인데 천리만리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을 말하라고 하면 내 다리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길가에 쉬고 있던 네팔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응원을 한다. 작은 몸집의 그는 자기 몸의 두 배는 됨직한 짐을 메고도 웃음을 띠고 있다. 작은 배낭을 메고 있는 내가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죽을힘을 다해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등에서는 땀이 물처럼 줄줄 흐른다. 

간드록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겨운 계단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고 그 계단을 중심으로 산비탈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티가람이 손짓으로 우리가 묵을 숙소는 좀 더 올라가야 한다는 시늉을 한다. 악이 나서 쉬지 않고 올라갔다. 마침내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인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오전에 포타나에서 지팡이를 사던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분명 저들이 우리보다 뒤에 출발했는데 먼저 도착해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다른 여행객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종일 산행 중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데 간드록에는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우리는 포타나에서 나야폴을 거쳐 간드록으로 왔는데 아마도 포타나에서 간드록으로 오는 다른 교통수단이나 길이 있는가보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히말라야 호텔 앞으로는 안나푸르나 남봉(7천219m)과 히운출리(6천441m), 그리고 마차푸차레(6천993m)가 서로 마주한 채 장엄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멀리 안나푸르나Ⅰ봉(8천91m)이 희미하게 흰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다. 여행객들은 거대한 설산들의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셔터를 눌러댔지만 나는 지쳐서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숙소부터 정해야했다.

호텔의 안내판에는 ‘친환경 호텔, 장작을 사용하지 않음, 깔끔하고 편안한 침실, 각방에 욕실 배치. 태양열과 전기를 이용한 온수 샤워, 깨끗한 욕실과 서양식 화장실, 신선한 유기농 채소, 끓이고 걸러낸 식수,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고 적혀있다. 네팔에서는 산림 남벌로 인한 산사태로 매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하거나 죽는다.

그래서 산림보호를 위해 남벌을 금하고 있다. 특히 많은 연료를 필요로 하는 숙박·식당시설 같은 곳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 히말라야 호텔 역시 호텔과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 정부의 시책에 따라 장작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호텔 지붕 위를 보니 태양열 집열판이 보인다. 우리는 전기도 아끼고 여행 경비도 아낄 겸 각방에 욕실이 있는 방 대신 공동욕실을 사용하는 삼층의 구석진 방을 선택했다.

그러나 침실과 욕실은 안내판에 쓰인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깔끔하고 편안한 침실도 아니었고, 깨끗한 욕실과 서양식 화장실도 아니었다. 난방이 전혀 없는 침실에는 나무침대에 매트리스와 이불이 전부였고, 욕실은 시멘트 바닥에 온수 샤워는커녕 찬김만 가신 차가운 물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이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바깥으로 펼쳐지는 전경에 넋을 빼앗겼다. 몸이 편안해지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기울어가며 설산 봉우리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다시 삼층 숙소로 올라가 카메라를 가지고 산을 잘 조망할 수 있는 호텔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땅거미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서둘러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주문한 식사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하루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음식을 풍성하게 시켰다. 맥주도 주문했다. 걷지 않고 이렇게 앉아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 우리가 정신없이 음식에 탐닉해있을 때 한 네팔 여인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자간 구룽이며 이 호텔의 여주인이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아주 반가워하며 카운터로 가더니 책자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1994년 3월호 ‘여성동아’였다. 거기에 자신이 소개됐다며 책을 펼쳐보였다. 책속의 사진은 젊은 처녀였고 ‘네팔 오지마을을 낙원으로 일군 히말라야의 딸 자간 구룽’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제서야 자세하게 살펴보니 사진 속의 여인과 우리 눈앞에 서있는 중년 여인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기사 속 사진은 28살 때였고 지금은 47세라고 했다.

자간 구룽은 지금의 간드록 마을을 있게 한 장본인이었다. 간드록 일대는 네팔 민족 중에서도 용맹스럽기로 명성이 높은 구룽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이 일대는 예전부터 많은 영국군 용병들을 배출하였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구룽족으로 영국군 중위 출신이었다. 그녀는 1965년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홍콩에서 태어났고 두 살 되던 해 네팔로 돌아와 포카라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간드록 지역의 발전을 위해 투신했다.

간드록은 1천940m나 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과 맞먹는 높이다. 차가 닿는 종점에서도 산길을 하루는 꼬박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깊은 산중이다. 그런데도 간드록은 네팔의 다른 산중마을에 비해 잘 단장돼 있다.

특색 있는 가옥들, 집집마다 아름답게 가꿔진 꽃과 정원, 특히 친환경적인 태양열과 전기시설을 이용한 편의시설을 집집마다 갖추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오늘의 간드록이 있기까지는 모두 자간 구룽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을의 외형 뿐 아니라 네팔 여성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또한 계속해오고 있다.

자간 구룽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호기심이 일어 손짓 발짓과 짧은 영어를 총동원하여 이것저것 물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호텔도 1994년부터 3년간 지은 것이라 한다. 한 여성의 힘으로 네팔에서도 오지 중 오지에 속하는 산중마을 간드록을 이렇게 발전시켰다니 그녀의 집념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술을 한 잔 권하자 그녀는 우리에게 직접 담은 술로 답례했다.

하루 종일 산길을 걸어오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호텔 여주인 자간 구룽을 만나 매우 유쾌한 저녁이 됐다. 여행의 또 다른 기쁨 중 하나는 우연히 만난 현지인을 통해 얻는 이런 감동이 아닐까 한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 일정도 있고, 또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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