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초여름이 교차하는 계절에는 봄꽃과 여름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그 간극이 아름다움으로 화사하다. 울타리를 장식하는 붉은 넝쿨장미와 쥐똥나무 꽃향기가 진동하는 유월이다. 절기상으로 초여름 속 입하, 소만이 지나고 망종의 계절이다.

본격적인 모내기들을 끝낸 들녘은 초록의 물결로 출렁댄다. 바람도 무심한 날, 나는 주변 모든 것들이 시들해져 길을 나선다.

다 저녁 때, 며칠 전 제법 많이 내린 비로 인해 더욱 잎이 무성해진 가로수 길을 내 달려 대청호로 간다. 생의 순간순간에 스미는 허기를 채우기에는 절기에 따라 정직하게 변하는 자연의 모습만큼 큰 위안도 없다.

호반길 옆에는 제법 맛이 유명한 국밥집이 있다. 나는 가끔 들려 허한 속을 따듯한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곤 한다. 국도변 외진 곳의 음식점이지만 늘 손님들로 분주하다. 그들 속에 나도 끼어 앉아 국밥 한 그릇을 든든히 먹고 값을 치르고 돌아 서는데 삼십 초반의 여자가 계산대 주인과 난처한 얼굴로 작은 실랑이를 한다.

그들의 대화를 얼핏 들으니 국밥 한 그릇을 여자가 포장해달라고 청하는데, 주인은 차가운 것으로 포장이 되지 따듯한 국밥으로는 포장이 안 된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여자는 그러면 안 되겠네요. 하고 포장주문을 포기하면서 혼잣말처럼 배가 고파서요. 라며 말끝을 흐린다. 짧은 청치마에 옅은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어딘지 국밥집 주변 시골에 사는 여자의 옷차림은 아니다.

나는 속으로 차가운 것을 집에 가지고 가서 데워 먹으면 되지 이상 하네! 의아히 생각한다. 식당주인 또한 들어 와서 드시고 가세요. 라며 두어 번 말한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 배가 고파서요만 혼자말로 되뇌며 아쉬운 듯 쉽게 그 자리를 뜨지 못한다. 나는 그녀의 숫기 없는 주저함이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하고 또한 딱해 보여, 내가 국밥을 먹는 동안 자리에 함께 할 테니 먹고 가라! 청한다. 하지만 여자는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언니 고마워요! 하며 내게 인사를 하고, 어둠이 내리고 있는 반대편 길로 황망히 뛰어 간다. 그리고 때마침 시내버스가 지나가자 급하게 세워 탄다.

나는 한동안 괜히 상심한 마음이 되어 그녀가 타고 사라진 시내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릴 적 비가 내리는 초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행색이 추레한 여자가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어머니가 저녁 준비로 분주한 부엌을 말없이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그러한 여자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어머니는 집안으로 불러들여 방금 지은 밥과 반찬으로 한상 차려 준다. 헝클어져 그녀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사이의 눈을 본 순간, 그녀가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 차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살뜰히 그녀를 대했다. 어머니의 밥상 음식을 달게 먹고 떠난 그 저녁 날의 모녀가 다른 곳에서 배고프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이상하게도 도망치듯 떠난 짧은 청치마의 여자와 어린 날 본 모녀의 모습이 함께 교차 되어 내 마음을 흔들고 간다.

한 시절, 누군가에게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이 배고픔 속 그의 세월에 따듯한 위안이 되고, 때론 막막히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든든함으로 작용한다면 미약한 것 같아도 그것은 큰 힘이다. 그 힘으로 그는 다시 두 다리를 단단히 땅위에 고추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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