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의 노인이 45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야?”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야?”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되세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은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 했다. 거기에는 자기가 세 살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 퍼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줬다. “까마귀라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난 정말 기뻤다.” 나는 다 큰 남매의 아버지지만 지금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짠하다. 내 아버지를 생각하며 사는 것 보다 어쩌면 자식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생각나는 계절이지만 아버지는 30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도 난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 이 나이가 돼서야 문득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난 왜 그렇게 못된 아들이었을까를 생각한다. 당신은 한 없이 정을 주었건만 우린 그 정을 무시하고 살았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한 없이 눈물겨운 고마운 아버지인데 말이다. 내 나이 여섯에 어머니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고 그 후 아버진 우리 4남매를 키우셨다. 그러다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우리 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어느 아버지가 5남매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중한 병에 걸렸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내가 사업 하다 빚을 졌다. 이자가 불어서 7억이 됐구나. 그렇다고 빚을 남기고 죽을 수도 없고. 그래서 너희들이 조금씩 갚아주면 좋겠구나. 종이에 갚아줄 수 있는 액수를 적어라.” 아버지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렵게 사는 셋째 아들이 5천만원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마지못해 1천만원, 1천500만원, 2천만원 이렇게 적었다.

몇 달 후 아버지가 다시 소집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걱정하며 모였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유산 조금 남은 것 갖고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반목할까봐 걱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 지난 번 적은 액수에 5배씩 계산해서 주겠다. 이것으로 상속은 끝이다.” 자녀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버렸다.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너무 많다. 청주 중앙공원이나, 서울 파고다 공원은 늙은 아버지들의 새로운 터전이다.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힘없는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할 미래를 다시 꿈꾸는 터전이 되기를 바란다. 당신들이 있어 오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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