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TV 드라마에서 조선후기의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일대기를 픽션화해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이는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그 동안 묻혀 있던 두 거장의 작품과 삶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간송 미술관’이 덩달아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것을 기억한다.

 간송 미술관은 봄·가을 2주씩 정기전을 열어 주제별로 유물을 기획전시하여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조선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화·전적·도자·공예 등 조형미술 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간송 미술관의 수장품에 대한 고증과 감정에 자문을 맡았던 당대의 감식안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은 간송 컬렉션을 한마디로 “천추(千秋)의 정화(精華)”라 극찬하며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고 하였다 하니 그 곳에 소장된 문화재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지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간송 전형필’은 이렇게 소중한 문화재들이 격동의 세월(일제시대와 6·25전쟁 등)속에서 연멸(煙滅)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아찔한 위기에서 사재(私財)를 들여 지켜냄으로써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정통성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나라 잃은 식민지의 부유한 젊은이가 조상이 남겨준 재산으로 유유자적 살아가는 삶 대신에, 자신의 피를 뛰게 하는 진정 뜻 깊은 일이 우후죽순 흩어져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한데 모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한 순간도 미루지 않고 또 그 일을 해내야 하는 이유도 구하지도 않은 체 바로 시작해 낸 그 담대한 의지와 열정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며, 이러한 간송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인해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가 만구칭송해 마땅한 일이다.

 또 ‘간송 전형필’은 청주시립도서관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책읽는청주’ 시민독서운동의 선정도서이기도 하다. 올 한해 동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문화 예술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던 시대에 한국 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 선각자, 간송 전형필의 삶과 그가 심혈을 기우려 지켜낸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들, 그렇게 한 개인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문화가 대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이유와 때를 논하지 말고 바로 달려들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시간은 미래의 꿈을 위해 마냥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조선시대 시인 이양연이 지은 시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길에 고요히 첫 발자국을 남긴 간송 선생이 떠오른다.

 간송 선생에 의해 힘겹게 만들어졌지만 이제 그 길은 오롯이 우리가 지켜야 할 희망의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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