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엄마의 목소리에 잠을 깨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들과의 맛있는 아침을 먹고 나면 나는 아주 익숙하게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이 생활을 습관처럼 내일도 모래도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들과 달리 한 해 7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으며 이들은 엄마의 목소리 대신 시끄러운 자명종에 새벽잠을 깨고, 익숙한 학교생활 대신 힘든 일터로 발을 옮겨야 하는 우리와 같은 10대들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학교를 떠난 이들을 흔히 ‘문제아’라 부른다. 하지만 우린 나와 같은 ‘학생’이든 학교를 떠난 ‘문제아’이든 모두 똑같은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느낌표’의 한 코너인 ‘하자하자’에서는 점점 사회 속에서 작아져만 가는 청소년들을 하나하나 솔직하고 진실 된 모습으로 담아내 주었다.

나는 이것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학교를 떠난 이들의 사회로부터 받은 손가락질이나 힘든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사회 속에서 편견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함께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스건 지하철이건 성인과 같은 요금을 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회 속에 몸을 던져야 하고 고된 일을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어른들이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 속에서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청소년들이 ‘문제아’라는 명칭으로 불려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보다 잘못된 인식부터 바꾸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학교를 떠난 이들에게는 더 큰 힘이 될 것이며, 모두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를 다니 건 안다니 건 우리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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