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여성 선교사가 운영해온 제천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10여년간 아동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수용소와 같은 폭행이 있었다.

아동폭력, 어린이 폭력,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라는 국정운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을 근절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나 경찰이 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해 근절할 수는 없다. 유아나 어린이에 대한 폭력은 그 특성상 신고가 없이는 발견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제천의 아동양육시설의 폭력이 10여년간이나 지속됐지만 발견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의해 공식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히든 크라임(暗數범죄)이 실제 범죄보다 18배가 많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대사회, 특히 우리 사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고 방관한다는 것이다. 중고등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싸움하더라도 끼어들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어른들의 시민의식은 그대로 청소년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전국 초등학교 4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5천530명의 학생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0명 중 4명이 학교 폭력을 목격했고, 이 가운데 44.5%가 못 본 척 방관하였다고 한다. 어린이 폭력, 학교의 폭력은 이처럼 다수 방관자가 있는 한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부모도 아이들에게 이러한 일에 참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침묵이 금이고, 침묵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에 의해 성폭력 피해여성 8명 중 1명만 신고하고, 범죄 피해자도 10명 중 8명은 신고하면 뭐하냐는 식으로 신고를 피하고 있다.

바로 이 침묵이 사회악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요인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하고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들이 수수방관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사회에 방관자가 많고, 침묵하는 사람이 다수일 때 사회의 정의는 사라지고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방관자에 대해 케네디 대통령은 단테의 신곡을 인용해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서 중립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라면서 방관자를 미워했다. 정의로운 사회는 침묵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됐을 때 다수가 침묵하게 되면 정부나 법도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침묵이 금이라고 가르치고, 신고가 범죄시 되고, 권리 주장을 이기주의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입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한다. 우리가 범죄나 불의를 방관하는 한 정부가 추진하는 4대 사회악의 근절은 구호에 그칠 뿐이고, 정의로운 사회는 이상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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