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에게나 자랑거리가 하나씩은 다 있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와 가문과 권력과 학위를 자랑한다. 어떤 이는 자식을 자랑하고 힘을 자랑한다.

그리스의 알치비아데스 (Alcibi ades)가 하루는 소크라테스 앞에서 자기가 소유한 토지가 매우 많음을 자랑하며 한바탕 늘어놓았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세계지도를 펴놓으며 “그러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어느 정도인가 여기에 그림으로 표시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치비아데스는 당황하며 “그런 농담은 마십시오. 내 토지가 아무리 많기로서니 세계지도에 오를 리야 있겠소”라며 소크라테스가 점잖게 말했다. “당신의 토지가 지도에도 표시할 수 없다면 그까짓 토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토록 자랑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 마치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랑할 것 하나도 없는 독일에 살던 한 청년이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했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데 너무 고통이 클 것 같았다.

목을 매려고 혁대를 목욕탕 고리에 걸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매단 후 의자를 발로 차버렸다. 그런데 혁대가 낡아 끊어지는 바람에 죽지 못하고 그냥 바닥에 처박혔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이 변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너무 감사했다. “죽다 살아났구나! 다행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모든 것이 희망차 보였다. 그 후 “그래,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결심하고 노력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쇼팽 음악의 최고 권위자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 ein)이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한다.

우리 생명에는 한계가 있다. 마냥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호객하며 자랑하며 산다는 것은 생명 앞에 수치일 뿐이다.

영생의 실존 앞에 허탄한 자랑으로 자신을 숨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힘은 더 큰 힘에 정복되고, 물질은 죽어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다는 것은 자랑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섬기고 희생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인생은 헛되고 생명은 짧다. 이사야서 40장 6-7절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고 말한다.

허무한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육체가 사는 동안에 생명의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생명의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을 배우고 알 때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생명의 존엄과 가치는 자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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