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음악에 맞춰 가마가 들어온다. 가마 위에는 장대같이 키가 큰 외국인 신랑이 타고 있다. 향교에서 사모관대를 하고 가마꾼들의 손에 의해 들어오는 모습이 새롭다. 잠시 후 도착한 가마 안에서 인형처럼 예쁜 신부가 내린다.

유년시절 보았던 막내고모님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혼례일 하루 전부터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군데군데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걸어 놓고 지짐이를 만들었다. 또 다른 한편에선 떡이며, 두부, 식혜 등 잔치 음식을 만드느라 온 동네가 분주했다. 이웃과 이웃의 정이 솔솔 붙는 듯했다. 있어도 없어도 서로 나누며 살아가던 정이 언제부턴가 메말라 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랬다. 동네에 혼례식이 있으면 어른들만 마음과 손길이 바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절로 신바람이 났다. 이곳저곳으로 몰려다니며 망아지처럼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다가 때만 되면 뉘 집 아이 할 것 없이 밥상머리에 모여 앉곤 했다.

혼례가 있기 전날 밤에는 함이 들어온다고 동네가 왁자했다. 현대사회에서도 가끔씩 골목 안에서 함 파는 소리가 들리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그런 결혼 풍속도는 까마득히 먼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예식자체가 간소해진 지금은 그렇게 쉽게 치르는 결혼식만큼이나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뭔가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 성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주 접하지 않았던 혼례식인지라 주례자의 선창을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고 어색하기만 하다. 첫 번째 순서가 시작된다. 기러기를 안고 들어와 신부 어머님에게 드리는 전안례다. 첫째로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며, 둘째로 기러기는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길라잡이 기러기의 소리에 뒤따라가는 기러기도 화답하며 예를 지킨다. 한 가정의 상하 질서를 지키겠다는 서약의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리고 셋째로 기러기는 왔다 간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기러기를 본받아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기러기를 놓고 예를 올린다고 한다.

다음은 교배례가 이어진다.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는 의식으로 이때 비로소 신랑과 신부는 상대방 얼굴을 상견하게 된다. 이렇게 상견이 끝나면 상대방에게 절을 한다. 교배례로서 상대방에게 백년해로를 서약하게 되는 셈이다.

끝으로 신랑신부가 표주박을 둘로 나눈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의례로 합근례를 행한다. 술은 부부로서의 의를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에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뜻한다. 표주박은 그것이 반으로 쪼개지면 그 짝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므로 그 둘이 합쳐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뜻이다. 신랑신부가 세 번 술을 나누어 마신다. 첫째 잔은 자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둘째잔과 셋째 잔은 표주박에 담아 나누어 마심으로 부부의 화합을 기원한다. 술잔을 받고 안주를 집는 신랑은  우리의 식생활과 달라 포크만 사용했기 때문에 젓가락질을 잘 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주례자가 성혼선언문을 낭독 하고 난 후 “네” 하고 어린아이처럼 그 큰 키를 무릎까지 굽혀가며 귀엽게 대답을 하는 바람에 하객들이 모두 웃음바다를 이뤘다. 현대화된 결혼식과 비교하면 진행되는 과정이 진지하고 긴 시간이다.

초례청에 마주 선 신랑신부의 모습이 새롭다. 한복의 화려함과 그 위에 입은 사모관대는 어딘지 어른이 돼가는 의젓한 모습과 고귀함이 보인다. 짧은 현대식 예식보다는 성대하고 신선해 보인다. 결혼은 일생에 한 번 치러야 하는 인륜지대사라 했다. 결혼식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 해 주기 보다는 축의금만 전달하고 식사만 하고 오는 현대인들은 한 번 쯤 생각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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