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이동 골짜기까지 더딘 걸음을 동동거리며 스승님을 뵈러 갔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선비라는 생각에 언제나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분이다. 임보 시인의 제자라고 감히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마음속 큰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제자의 도리일 텐데 그러지도 못하면서 가끔씩 얼굴 뵙는 것으로 제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나 역시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늘 스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제자들에게 미안하고 제자의 역할을 못하여 스승님께 죄송하다. 그 분께는 시를 배우기에 앞서 사람이 사는 도리와 옳은 방향을 배운다. 한번도 ‘그러면 안 돼’라고 하신 적이 없이 묵묵히 들어주시고 내 편이 돼 말씀하시면서도 옳은 길을 짚어주신다. 살며 길을 잃었을 때 한 번씩 뵙고 오면 잃었던 길이 벌떡벌떡 일어서 환해진다.

얼마 전 졸편들을 엮어 수필집을 한 권 출간했다. 내놓기도 부끄러워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돌렸다. 며칠 후에 현관에 반듯하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엽서가 한 장 날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은 참으로 보기 드문 손글씨 서신을 보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더 놀라운 것은 발신자가 중학교 때의 국어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출간을 축하한다는 말씀과 제목과 내용도 좋다는 격려의 말씀이 적혀있었다. 참 의외였다. 술 좋아하시고 농담도 잘 하시고 문학회 모임을 활기 찬 분위기로 만드시는 분이지만 이런 자상한 면은 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쯤 된 아이들을 보면 참으로 막 피어나는 꽃처럼 예쁘다. 가슴 속에 간직한 꿈도 많을 것이고 웃는 모습도 찡그린 모습도 모두 막 물오른 버들개지 같지 않은가. 사십 년 쯤 전 그렇게 꽃 같은 시절에 복도를 지나가는 내게 그 선생님이 외모를 가지고 놀린 적이 있었다. 스스럼없이 대하려고 하신 말씀인 줄은 알겠는데 그 후로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겼고 못 생긴 내 얼굴 때문에 공연히 주눅이 들어 살게 됐다. 선생님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시겠지만 수줍음이 많았던 내게는 상처가 돼 있었다. 문인이 돼 문학회에 들어갔더니 그 선생님이 계신 것이 아닌가. 내심 달갑지는 않았다. 지금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나이도 됐고 농은 농으로 받아들일 여유도 생겼으니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미운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학회의 까마득한 후배인 햇병아리가 펴낸 책을 세심히 읽어주시고 격려의 서신까지 보내주시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누가 해주는 칭찬보다도 더 큰 기쁨이 됐다.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제자지만 그 제자의 일을 함께 기뻐해주시고 진심으로 영광을 기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스승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한자 한자 엽서를 읽으며 그 분께 향했던 원망과 미움이 정성스런 글자를 따라 하나하나 지워지고 있었다.

부모와 격을 같이 한다는 스승 아닌가. 끝없이 축복해주고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스승 아닌가. 종아리를 치고는 당신의 마음이 더 아픈 사람, 제자의 영광이 마치 자신의 영광인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 길 잃은 제자를 위해 무릎으로 기어서 길을 열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스승 아닌가. 사십년 묵은 원망을 내려놓고 나니 한 겨울의 화단이 갑자기 환해진다.

스쳐왔던 많은 스승님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나를 스쳐 갔던 제자들의 얼굴도 떠올려 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준적이 있으리라. 부끄러운 스승의 모습을 보인 적도 있으리라. 선생님의 엽서 위에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놓고 나도 영광을 빌어 본다.

한 겨울을 지나며 받은 손바닥만 한 엽서 한 장이 폭설을 지우고 매운 바람을 지운다. 중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도 임보 교수님도 내게는 큰 스승이시다. 함께 기뻐해주시고 함께 마음 아파해 주시고 바른 길을 열어주신다.

사는 일은 언제나 따뜻하지만은 않은 것이고 언제나 환하지만은 아닌것이라고, 잘 견디고 잘 일어서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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