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자본주의사회 이전부터 어느 사회에서나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빈곤의 개념은 시대나 사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의 한국사회 빈곤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시기의 빈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빈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한다.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주거비, 식료품비, 의료비, 가구집기 등 372개 품목의 가격을 실측하고, 실측을 하지 않는 해에는 물가상승률을 자동 적용해 정한다.

2013년 현재 4인가구 기준 월 154만 6천399원 수준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명시돼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은 보장하겠다는 국가의 기초 사회안전망이 제공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최저생계비 수준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최저생계비 수준은 매년 일반 국민들의 삶보다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사회복지계와 노동계는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중위소득의 50% 정도로 상대빈곤선을 정하고 이에 맞춰 최저생계비를 정하는 방식을 수년째 요구해왔다.

박근혜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상대빈곤기준으로 계측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내비쳤으나 결국 인수위에서 예산부담을 이유로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상위계층 기준을 현행 최저생계비의 120%(월 185만원)에서 중위소득 50%(월 200만원)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차상위계층의 개념을 절대빈곤층에서 상대빈곤층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차상위계층은 2010년 기준으로 72만가구(165만명)에서 151만가구(296만명)로 거의 배로 늘어난다.

차상위계층 선정기준에 상대빈곤 기준(중위소득 50%)을 도입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을 바꾸지 않은 것은 빈곤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절대적 빈곤개념에 기반 한 현재의 최저생계비는 일반가구소득과의 격차가 더 벌어져 최저생존수준에도 못 미치는 의미 없는 기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빈곤층에 대한 복지정책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가 실제 가구소득에 비춰 해마다 낮아져 지원받아야 할 대상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슬로건들 중 하나가 중산층 70%를 이뤄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 정책의 출발점은 빈곤의 대물림과 소득계층 간 이동성 봉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조치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빈곤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기초생활비 지원확충 등 사회보장제도의 효율적 정비에 이어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근본적 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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