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실상 낙마했다.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검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이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관행으로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공적 업무를 위해서 지출해야 하는 특정업무경비로 후보자가 연간 5천400만원을 받아서 개인 계좌에 넣어 보험료 내고, MMF에 투자해 자산을 증식하는 데 사용한 의혹에 대해 자신의 월급보다 많은 눈먼 돈을 받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정업무경비는 헌법재판소뿐 아니라 검찰ㆍ경찰ㆍ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포함해 50여 개 정부기관에 배정되는 예산 항목이다. 특정업무경비는 자료수집, 조사, 외부인 접촉 등의 업무에 드는 비용으로 올해 총 6천500억여원이 책정됐다.

특정업무경비에 대한 집행규칙을 보면 이미 20년 전부터 정부의 지침에 의해 사용내역과 증빙자료를 첨부해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동흡 후보자가 주장하듯이 헌법재판소가 특정업무비용을 ‘1993년 이전 정보비 항목과 같이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는 눈먼 돈으로 벼슬에 묻어나는 떡고물로 생각하고 그렇게 처리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정업무경비가 사적인 수당이나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행정기관에서는 ‘1999년 이후 항목을 제외했다. 그리고 부처나 기관장의 업무추진비도 사용내용을 매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예산운영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비공식적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비공식적 지출이 많을수록 예산운영의 투명성과 통제는 어려워지게 된다. 

조선시대의 조세제도를 보면 이러한 비공식적인 판공비가 조세제도를 어지럽힌 대표적인 항목이었다. 판공비란 명분으로 조정에 바치는 정식 조세 대장에 올리지 않고 조세를 거뒀다. 또한, 불법적으로 판공비를 조달해 조세제도를 어지럽게 해 백성의 원성을 들었다.

대표적으로 아들을 낳으면 적령이 되기 전에 병역부에 등재해 병역세를 받고, 죽은 사람에 대해도 병적에서 제적하지 않고 병역세를 받아 판공비로 충당했다. 전자를 황구포(黃口布), 후자를 백골포(白骨布)라고 한다. 민원서류를 발급할 때마다 결재비용으로 받는 걸복비((乞卜費), 과천 현감이 한양으로 가는 사람에게 받은 상경세(上京稅)도 판공비 명목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치계미(稚鷄米)와 시탄미(柴炭米)와 같은 것은 고을 수령의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 세금에 일정액을 붙여서 받았다.

이동흡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예산상 독립기관인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의 예산집행에서 판공비의 관행이 살아있지는 않은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들 예산상 독립기관들은 예산 집행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국민의 감시 밖에 존재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국회의원은 이동흡 후보자를 비난할 정도로 예산집행에서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1988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는 국회의원에 대한 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와 2005년 신설된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개인의 보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누가 청문회를 실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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