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말

변양섭  말, 말, 말! 말이 없는 세상을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말이란 우리 생활에 참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사람의 인격 또한 나타난다.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나 많은 불편이 있겠는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서로 쓰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때도 있다.   

친구 남편이 교환 교수로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친구의 별명이 ‘잘게 여사’ 였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닭을 사러 갔단다. 그런데 남편이 친구를 혼자 남겨둔 채 숨어 버린 것이었다. 친구는 당황하여 쩔쩔 매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온갖 몸짓 손짓을 섞어, ‘잘게 잘게’라고 우리나라 말을 섞어 가며 칼로 치는 흉내를 내었더니 닭도리탕을 할 수 있도록 잘게 잘라 주더란다.  

말이란 이렇듯 서로 소통되지 않으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판토마임을 보는 것처럼 우스운 장면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쉽게 전달이 되지 않아 엉뚱한 일을 저질러 놓을 수도 있다. 이처럼 말이란 우리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다.   말이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있어야 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들어 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아야 한다. 이른바 독백이다. 이런 경우 지나치게 오래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게 한다. 행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십여 년 전에 성가대 단장을 맡은 일이 있었다. 피곤하거나 힘이 들면 쉰 목소리가 나거나 아예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비인후과로, 한의원으로 뚜렷한 효과도 없이 2년여 세월만 보냈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목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목을 쓰지 말라 하니 더 말하고 싶고, 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할 수 없이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목에 작은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지겨운 수술을 또 하라니…” 생각만 해도 질리는 일이었다. 10년마다 주기적으로 한 수술이 벌써 몇 번째다.  끝내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고, 한 달간 말을 하면 안 된다 하였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성대가 울려도 다시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면 참아야 한다고 의사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할 수 없이 노트를 사다 놓고 글로 써 가며 대화를 했다. 전화가 와도 받을 수 없고 그 답답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마음껏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다. 말 할 수 있고 들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제야 알 듯했다. 그 한 달간의 기간이 내게 얼마나 고통이고 지루함이었는지 모른다. 고통을 참고 견디며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내 잣대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곱지 않아 기도에 분심 든다고 투덜댄 일도 반성하고 후회했다. 

소리를 낼 수 있고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인지 늦게 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때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말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가슴에 맺혀 있는 모든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 놓고 싶을 때 들어 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상대방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내 생각만 하고 길게 이야기를 끌어 나갈 때가 있다.

 내가 그렇듯이 누군가 나에게 털어 놓고 시원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전화를 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 엉거주춤한 상태이거나 생리적으로 급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말을 끊기 어려워 불편 할 때도 있었다. 나 또한 상대편을 괴롭게 할 때도 없지 않을 일이다.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이 행복이다. 목소리가 이상해도 분심 들지 않고,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음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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