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초적 본성인 성욕(性慾)은 종족번식의 근간 외에 감성적 요소가 숨어 있다.

남녀간의 연애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성문화에 대해 지극하게 금기시했다.

중국의 왕실에서는 태자가 어렸을 때부터 춘궁도(春宮圖)를 제작해 성교육을 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게 되자 위트가 넘치는 유희 등을 통해 간접적 경험을 맛보았지만 성에 대한 욕망적 관심은 어느 시대에나 유행하였다. 오늘날 ‘성인잡지 플레이 보이’와 같은 춘화는 금욕적 규율이 완강할 수록 더욱 더 베스트셀러화 되었다.

세계의 대다수 나라에서는 성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인터넷상에서 성인인증이 되지 않으면 볼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최근 성인들에게도 공개하기 주저했던 조선 후기의 춘화(春畵)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대단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시대의 춘화는 누가 그렸을까? 놀랍게도 상품성의 가치 때문인지 김홍도와 신윤복 같은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었는데 이들의 작품이 다소 포로노그래피를 한 것도 있지만 다산의 기원, 노인의 회춘, 성교육 등의 목적이었기에 해학적인 면이 많이 내포돼 있다.

이처럼 춘화는 세계 각국을 막론하고 유행했으나 우리나라는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 문화와 출판 유통시스템이 활발하지 못해 다소 늦은 조선 중기 이후에 출현했다.

우리나라 춘화의 화풍은 주로 한량과 기녀와의 관계지만 신분과 남녀노소는 물론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일종의 사회 풍자와 서정미 넘치는 생활의 한 부분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빨간책은 당대 유명화가 작품이거나 모조품이 상당수 암거래 되었다. 

춘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지만 도교가 성행하였던 중국 고대에서는 성적 신비주의가 전개됨에 따라 쾌락보다는 음양의 조화에 따른 건강 유지와 성교육 차원에서 이뤄진 방중술(房中術)이 생겨나게 됐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 저작된 ‘한서예문지’ 방기략(方伎略)에 보면 “방중술에 대하여 여덟 명의 대가가 쓴 책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소실돼 상세한 내용조차 알기 어렵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금욕의 시대 같지만 사대부들간에는 이러한 춘화첩을 은밀히 선물로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낮에는 글이나 읽으면서 고상한 척 체면을 차렸지만 은밀한 장소에서 몰래 보는 성희(性戱) 장면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궁중의 어린 왕자들이나 사대부가의 규중에서 어린 신부들을 위해 성교육 자료인 혼수용품으로 이용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춘화는 각 나라의 문화권과 시대의 정서를 보여주는 생활사로 당대의 유일한 미디어 수단인 그림으로 전달해 글을 몰라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성폭력과 성희롱 사건을 비롯해 성과 관련된 문제가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제재만 할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학교 과정이 돼야만 체육, 가정, 생물시간 등 인체의 생리적 현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언급되고 있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돼야 한다. 이러한 추세에 최근 충북도교육청에서 발간한 ‘소중한 성 이야기’ 성교육 자료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성지식과 가치관을 함양하는 지침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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