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전철역을 나서는 내 앞에 그는 마중을 나와 서 있었다. 멋 적은 듯 웃어주는 입가엔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성치 못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그와 계단을 내려오면서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약속시간을 재며 나왔기 때문에 딱 맞춘 약속시간,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이렇게 올라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조금 후회스러웠다. 항상 자로 잰 듯이 빠듯하게 시간을 재는 버릇이 내겐 있었다. 얼마나 못된 습성인지 먼저 가서 기다리는 여유쯤은 누려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설 주의보를 내린 날씨 때문에 무척이나 망설였었다. 다시 약속을 잡자면 또 기약이 없을 터 그냥 우린 만남을 약속했다.

눈이 내린다. 온다는 표현 보다는 왠지 내린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게다. 앞 유리에 부딪혀 녹아내리는 눈! 시화다리에서도 영종도 다리에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을씨년스런 바닷가, 저만치 갈매기 한 마리 외로워 보인다. 소나무위에 살짝 걸쳐 나뭇가지 위로, 풀 위로 쌓여지는 눈, 눈 속에 갇힌 세상이 더 아름답다. 그에게는 어떤 이기심이나 속임수란 없다. 찌들어 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놓고 솔직히 표현할 수 있고, 속된 마음이란 더욱 보이지 않아 나는 그를 좋아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와의 만남은 눈의 축복과 함께 였다. 길가에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아주 오랜만에 눈을 맞으며 작은 아이처럼 가슴은 뛰고, 천진한 어린이처럼 즐겁기만 했다. 동생처럼, 어머니처럼 잡아 본 그의 손은 차가웠다. 아기처럼 좋아라. 손난로 같다던 그의 손은 체격처럼 아주 작고 귀여웠다.

오늘은 그냥 연인이 되어 보는 거다. 내 마음의 연인.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대화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연인, 잠시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마냥 행복했다.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 일거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나 그의 마음이, 그의 생각이, 그의 행동이 자유로움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아름다운 가슴이 있어서 일거다. 비록 짧은 7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를 나는 언제나 좋아한다.

만남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컴퓨터 안에서 같은 문학, 같은 장르로 등단을 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는 그의 글 속에는 세상사는 이야기가 들어 있고, 남다른 순수가 보였다. 언제나 따듯한 가족들 간의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 글에 대한 열정과 순수성이 나를 호감가게 했다. 가끔씩 올리는 나의 자작 글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컴퓨터라는 매개체가 주는 나쁜 이미지와 달리 그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장애인 아빠를 위하는 착한 아이들, 사랑의 눈으로 남편을 보는 부인의 따듯한 마음은 이렇게 좋은 만남도 있구나. 컴퓨터가 없었으면 만나기 힘든 인연이 아니었나? 정보화 시대의 산물인 컴퓨터, 이것을 다룰 수 있는 내 스스로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소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 눈 내리는 바닷가, 카리브 카페 주인인 듯한 한 사람이 눈을 치우고 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바다에 내리는 하얀 눈 속에 내 삶의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창가에 앉아 따끈한 차를 마시며 바다로 내리는 눈을 보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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