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8대 대통령 선거 결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대통령, 부녀대통령을 선출하면서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그동안 분열되었던 민심을 포용하며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정책을 펼쳐주었으면 한다.

 정권말기와 대선을 전후로 공직기강의 해이(解弛)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공직자들의 부정비리와 권력남용을 비롯해 최근 초급 검사와 지방자치단체 간부가 여성 문제로 문책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성과 감정이 같기 때문에 이러한 부류들은 특정한 시기나 시대에 관계없이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로 예전에 비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왕조국가였던 조선시대는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백성의 눈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한편 역사를 두렵게 하여 사리사욕보다 공리민복(公利民福)을 지향토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조선 500년 내내 총체적인 공직기강 문란(紊亂)은 끊일 줄 몰랐다. 

또한 전쟁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절에는 공직기강이 더욱 무너져 사관들의 직무태만도 빈번했다. 그리하여 선조 30년 사헌부에서는 역사 편찬 작업을 위한 기초자료 정리를 4개월 동안이나 방치해 두었던 사관들에 대한 처벌을 주청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전쟁이 한창인데도 관리들은 앞 다투어 휴가를 내는 등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궁궐에서 내외근을 하는 궁인들의 근무기강도 마찬가지였다. 선조 31년 1월에는 임금이 직접 내시들의 근무태만을 지적하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도 했다. 

공직기강 확립 문제에 관해서는 세종이나 숙종이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엄격한 편으로 반드시 포폄(褒貶:근무평정)에 적용했다. 반면 세조는 혁명으로 세운 왕조인지라 그들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공신들과 대궐에서 대낮에도 술을 즐겼기 때문에 가장 관대했다.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은 도승지(都承旨:비서실장)와 6승지(承旨:비서관)가 있어 왕의 모든 명령을 받들고, 신하들이 올리는 글(上奏)도 검토해서 왕에게 올리거나 반송했다. 또한 윤대(輪對)나 차대(次對) 등 임금과 신하의 만남도 주선하는 등 업무 성격상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으로 일 처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 업무 규정집인 ‘은대조례(銀臺條例)’를 만들었다. ‘은대'는 승정원의 또 다른 이름이고, ‘조례’는 국왕의 명령과 관사의 관례를 모아서 정리한 규정(업무처리지침서)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각 기관의 업무규정과 같은 서운관이나 규장각 등 각 관사(官司)에 대한 복무지침이 승정원의 규정을 근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은대조례’에 보면 승정원의 근무 지침은 엄격했다. 출근할 때 지각하면 벌을 받고, 공무가 아니면 근무 장소를 이탈할 수 없고, 자리를 비울 때는 반드시 보고해야 했다. 공무 중에는 한밤중이라도 관복을 입어야 하고, 도승지 방에서 하위 승지는 관디(관복 모자)를 벗을 수 없고, 도승지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부채질을 해도 안 되는 등 예의를 중시했다. 오늘날 근무시간 중에 애니팡과 스마트폰 게임으로 직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보면 옛 제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은 공무원이나 일반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복무규정이 있고 이에 따른 인사고과에도 반영되고 있다. 반드시 성과관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규정을 엄수하며 직무를 수행할 때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발전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정권 교체를 앞두고 정치권 줄대기 및 정치관여 행위 등에 대해서는 감찰활동을 강화함은 물론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분명히 해 공직기강을 확고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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