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스릴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시(詩)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공자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치자(治者)에게 시인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시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잘 풀리는 까닭으로 공자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처음에 시(詩)는 왜 생겼을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가 있게 됐다.

이를 살핀 공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시들을 모아 “시경(詩經)”이란 밭을 일구어야 했었을 게다. 그리고 군자는 시와 같은 밭이 돼야 한다고 공자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공자는 시와 같은 마음의 밭에는 생각에 사악(邪惡)함이 없다고 밝혔다.

사악(邪惡)함이 없는 것을 알면서 실천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시를 읽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공자는 반문한다. 무사(無邪)를 알아야 하고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공자는 그가 바로 치자(治者)라고 믿었다.

치자(治者)는 왜 무사(無邪)해야 하는가? 치자는 선(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본래 사(邪)는 선(善)을 부정하고 악(惡)을 긍정하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다 선(善)은 아니다. 편을 갈라 사랑하면 그 사랑이 증오를 불러온다. 편애(遍愛)가 미움을 사게 되는 연유로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선(善)이 불선(不善)이 돼버리고 나아가 그 불선이 악(惡)이 되는 꼴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무사(無邪)한 마음은 항상 공평하다. 공평한 마음이어야 총명하고 총명한 마음이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 백성을 고루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공자는 마음에 있는 사(邪)를 물리치라고 했던 것이다.

마음이 무사(無邪)하면 그 마음이 곧 군자의 마음이다. 거짓이 없고 공평하여 총명한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겁낼 것인가. 마음이 거짓이 없어(無邪) 백성을 고루 사랑하게 하는 시(詩)를 읽고 알아서 실천한다면 어느 치자(治者)나 세상을 잘 다스리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공자는 확신했다.

공자가 말하는 시(詩)란 백성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노래를 주로 말한다. 백성의 마음을 읽고 알아 그것에 따라 실천한다면 왜 정치를 못할 수 있을 것인가? 못할 리가 없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진실이다. 민심(民心)을 따르는 치자(治者)는 민심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심을 언덕으로 삼고 의지한다. 그러나 민심을 무서워하는 치자는 백성을 어기고 다스리는 것을 훔치는 짓으로 착각한 다음 겁을 낸다. 그리고 백성을 탄압한다. 백성을 탄압하는 것보다 더한 악(惡)은 없다. 이러한 악(惡)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무사(無邪)한 마음을 어느 날에나 백성은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도 바라고 기다려진다.

12월은 우리의 지도자를 뽑는 달이다. 무사(無邪)하고 공평하고 총명하여 백성의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이 뽑혀야 할터인데. 하기사 민심은 천심, 천심은 민심이라 하지 않는가. 내가 괜한 욕심을 부리나 보다. 모든 것 백성의 마음에 따라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을……. 또한 나라의 운명인 것을 내 어찌 안달을 해서 된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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