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주위 사람들이 “그 연세에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힘들지 않느냐. 젊고 능력 있는 동서에게 시어머니를 모시라고 해라”며 위로 섞인 말을 해주면 도리어 힘들기는커녕 시어머니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젊어서 며느리한테 그다지 잘 해주지 않은 시어머니가 늙어서도 빨리 돌아가시지 않고 귀찮게 구는데 뭐가 감사하냐고 물으면 “저 어른이 안계시면 내 몸이 피곤할 때는 내 끼니도 굶기 일수 일 것이고 청소고 뭐고 제대로 하겠나. 그래도 집안에 어른이 계시니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 드려야 하고 그 덕분에 내 끼니도 빠짐없이 때우게 되는 것이고, 어른이 계시니 어쩔 수 없이 청소니 빨래니 하게 되고 그것이 적절히 운동도 되어 이 정도나마 기력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안 좋은 것을 좋게 하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지혜가 감사이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니면 감사할 일만 생긴다.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다보면 어느새 큰일에도 감사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한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는 노트에 두 칸을 그린 후 한 칸에는 좋은 것을 기록하고 다른 칸에는 나쁜 것을 기록했다.

그가 외로운 섬에 던져진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익사하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었다. 인간사회에서 추방된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굶어죽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고, 옷이 없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옷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한 것은 좋은 것이었다.

방어도구가 없는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야수들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이고,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파선된 배를 해안 가까이에 보내주셔서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것이었다.

크루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열거한 다음 세상에는 부정적인 일이든 긍정적인 일이든 감사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어떤 상황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고 보고 좋은 면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다.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을 지켰다. 1년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것이라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던 절기였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럴까?

어머니가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에 놀러갔다.

이웃집 부인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다. “얘야 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껍질 벗겨주세요” 웃자고 하는 말속에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아이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지 말고 아직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며 감사해 보자. 약한 것으로 인해 고민하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감사해 보자.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감사해 보자. 감사의 그릇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은혜가 크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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