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고갔던 글과 사진, 답을 보내기에만 급급했었다. 마음이 통하는 그 시인부부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집을 나서는 마음부터 설레었다.

전철역에서 우린 서로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 와 그 분의 승용차로 함께 도착한 곳은 한강 둔치의 선유도 공원이었다. 가지 끝에 달린 몇 개의 감이 가을을 실감하게 해 준다.

깊어가는 사랑

무리지어 핀 가을 들꽃도 빼 놓을 수 없다.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떼도 한가롭고, 가지각색 체육복을 입고 달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이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부인이 어디서 따 왔는지 보리수 열매를 한웅큼 따서 남편과 내 입에 넣어준다. 은은한 향과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은사시나무 사이를 걸으며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우리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다리 위로 올라가니 분수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까마득히 하늘을 향해 선 미루나무가 우리들을 반기고 있다. 잠시 의자에 앉으며 이렇게 편안히 쉴 수 있는 자리가 있음에 행복해 했다.

다음 승용차를 타고 쓰레기 매립지로 유명한 난지도를 향했다.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공원, 난지도공원, 평화공원 등등 몇 개의 공원을 모두 볼 수는 없어 차로 돌았다.

끝으로 하늘공원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옆에는 갖가지 들꽃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올라가며 보는 난지도의 가을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 떨쳐 버리고 가을을 가슴에 듬뿍 담아 가야 하겠다. 한 계단 한 계단 계단을 오르며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천국의 계단이 이럴까? 갈대와 억새가 감국이며 구절초 들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늘아래 가득했다. ‘하늘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반짝이는 은빛 억새는 내 키보다도 훨씬 높이서 눈부시게 한들거리고 있었다. 억새 사이를 걸으며 행복했다. 억새밭을 지나 군데군데 구절초화환을 만들어 놓은 꽃 속에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은 그 뿐이 아니다.

내가 오늘 만난 부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남편의 한쪽 손엔 목발이, 또 다른 쪽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지팡이를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남편을 보며 ‘아주 착하고 외모로 보아 귀공자처럼 생긴 덕에 좋아하는 여인들이 많았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는 부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글을 좋아하여 감성적이고 서로 말이 잘 통할 수 있어 여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살아 왔던 남편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했던 여인들이 막상 결혼 앞에선 뒷걸음질을 치고 소리 없이 떠나갔단다.

‘세상엔 외모는 멀쩡하지만 마음이 불구인 사람도 많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고, 비록 몸은 온전하지 못하지만 온전한 이 보다 더 온전한 마음과 따듯한 사랑이 가슴에 내제되어 있음을 부인은 볼 수 있었단다.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행복이 무언 줄 아는, 다른 이 에게 보이지 않는 영혼의 맑고 고운 마음이 보였단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헤어진 남편을 먼저 ‘결혼하자’고 말 했다는 부인의 숭고하고 깊은 사랑을 알 수 있었다. 겉모습은 부끄러움이 아니기에 당당한 두 사람을 곁눈 질 해 보는 마음마저 행복하다.

촌수 없는 관계

부부란 멀리 있어도 가장 가까운 촌수 없는 사이, 서로 곁에 있어 행복한 순간순간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두리번거리며 찾는 모습도 아름답다. 어떤 일 이든 말 하지 않아도 따듯한 눈 길, 조용한 미소, 그윽한 눈 빛 하나로 통하는 이들 부부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이어 깊은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음이 보인다.

혼자 하는 것 보다는 둘이 하는 게 수월함을 알기에, 신뢰하고 협조하고, 거들며 아름답게 살아간다. 상대방 눈의 들보가 내 눈의 티 보다 작게 보이는 긍정적인 맘으로 상대를 알고 나를 맞추며 살아가는 순종의 미덕이 보인다. 이들 부부의 사랑은 무지개빛 찬란한 사랑이기 보다는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 같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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