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체육인을 찾아서] (19)황명동 궁도연맹 회장

“최선을 다한 꼴찌에게는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아무리 하찮게 보일 지라도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젊은 세대들에게 부탁 드립니다.”

70이 넘은 노구임에도 예리한 눈으로 과녁을 주시하며 힘차게 시위를 당기는 모습에서 오히려 젊은 기자의 기운을 한순간에 압도해 버리는 대전시체육회 궁도연맹 황명동 회장(71·한진그룹 퇴직)을 만났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촉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순간에 설정된 곳으로 정직하고 반듯하게 날아갈 뿐이죠” 얄팍한 기교에 상관없이 시위를 떠난 그 순간이 정직하게 그대로 결과로 나타나는 궁도의 매력에 사로잡힌 황 회장.

55세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한진그룹 동양화재 청주지점장을 정년퇴직한 황 회장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도솔산 산책을 하던 중 월평궁도장(대덕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운동에 여념이 없는 회원들을 보면서 ‘궁도’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회원 대부분의 나이가 자신보다 한참 연배인 것을 확인한 황 회장은 “내가 지금 직장을 퇴직한 것이지 인생을 정년퇴직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닳고 회원으로 등록, 거침없는 궁도의 매력에 빠져든다.

16년의 궁도 경력으로 공인 2단을 보유한 황 회장은 궁도 실력이 늘수록 나이가 드는 것도 느끼지만 일주일 중 5일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대덕정의 ‘최고령’ 이찬희 선배(93)를 보면 70이 넘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게 된다고.

충남 홍성 출신으로 충남대학교 토목과를 졸업한 황 회장은 외국을 자주 오가던 작은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준 스케이트로 인해 중·고교 시절은 물론 대학재학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도 활약했던 경력이 있다.

언제나 함께 곁을 지켜주고 있는 강효섭(전 대전시티즌 사장)·노병량(전 중앙여중 교장)·강휘수(철도공사 퇴직)씨  세친구가 서로 간에 인생의 멘토가 되고 있다고 밝히는 황 회장은 “50년 넘는 우정이 변치 않고 지금도 1주일에 한번은 만나 서로의 건강을 살펴주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즐기고 있다”며 “그래서 마누라들이 붙여준 모임의 이름이 ‘악마회’다”라고 귀뜸한다.

월평궁도장 사두 김우식씨(70·전 공주대 교수)는 “황 회장의 궁도사랑과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며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겨있고 정신수양과 장수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전통스포츠인 ‘궁도’를 사랑해 달라”고 당부한다.

전국규모의 궁도대회를 대전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황 회장은 “내년 5월께 전국대회를 대전에서 치르게 됐다”며 “전국에서 2천여명의 선수들이 참석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흥분했다.

아울러 가칭 ‘궁도대학’의 충청권 설립을 위해 꾸준히 물밑 작업을 하고 있어 민족전통무예인 ‘궁도’의 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황 회장의 숨은 노력이 엿 보인다.

자신과 과녁과의 외로운 싸움에서 모든 잡사(雜事)를 잊고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적중할 때의 쾌감을 느껴 본 궁도인들이 오늘도 활시위를 당길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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