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덧옷을 걸치지 않으면 몸에 드는 한기로 감기에 걸리기 십상인 계절이 다시 왔다. 벌써 성급한 가을 산의 단풍은 7부 능선까지 내려와 호객 행위로 산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호시절이다.

내 나라 이 땅에서 키우고 가꾼 농산물들을 거두어 지자체마다 야심찬 축제의 장을 연다. 일일이 호명 할 수도 없이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는 수도 없다. 축제의 장으로 가는 길은 마음만 앞섰지 차의 행렬은 더디고 느리게 긴 줄을 형성한다.

음식을 발효해서 만든 먹을거리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보다 훨씬 많았고 새로운 재료들로 만든 발효식품들은 현대의 입맛에 맞춤식 먹을거리로 진화하고 있었다.

일단 눈이 먼저 시식을 한 다음에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은 오감을 자극하고, 가슴에 행복한 느낌을 선사하니 미식의 세계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쾌락 중에 하나다.

작가 김훈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으로 이뤄졌고 나머지는 다 부속기관이다’고 말했다. 그의 형용사나 부사도 없는 문장은 인간을 극명하게 동물의 수준으로 가차 없이 끌어 내린다. 입과 항문을 근간으로 무엇인가 잡아먹고 주워 먹어야 하니 손과 발이 생겼고, 숨을 쉬기 위해 폐가 생기고 그렇게 나머지 장기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먹고 배설하는 가장 단순한 인간의 행위야 말로 가장 원초적 쾌감인 것이다. 그 이원적인 원초의 쾌락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여기저기서 소란스런 웃음소리와 손님 접대로 행사장은 왁자지껄 축제의 난장이다.

옛날에는 집안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거의 한 달 전부터 음식들 준비로 어머니와 할머니의 부엌과 광은 분주하고 소란스러웠다. 또한 일년 내내 우리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게걸스레 먹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돼지도, 피 한 방울 안내고 짐승을 잡는 당숙 아재의 손에서 잔치에 오를 음식으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돼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날은 동네 아이들에게도 숭고한 제의인양 학교를 일찍 파하고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지만, 어른들의 제지로 담 너머에서 소리로만 죽음의 공포와 연민을 느꼈다.

내 유년시절엔 그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로 잔치 준비를 했다. 모든 것들은 대부분 자급자족으로 만든 음식들이었다. 그 음식들을 나누며 몇날며칠 동네 사람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너나 할 것 없이 궁핍한 살림살이들이었지만 인정이 넘쳐 나던 시절이었다.

이제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웬만한 음식으로는 우리의 미각은 감탄을 하지도 감사해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살림살이는 풍요로워졌고, 잘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전화 한통이면 어느 지역 산물이던 간에 하루 이틀 사이에 바로 택배로 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먹을거리가 풍부해졌어도 우리네 삶의 질은 음식들이 넘쳐나는 것에 비해 행복해 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경제구조는 이원론적으로만 흐르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체계이다. 국가 GDP는 성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평균치인 것이다. 평균이하의 사회적 약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싹쓸이 상권으로 골목 상권은 다 죽었다. 큰길을 벗어나 바로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빈 상가들이 즐비하다. 대선이 코앞에 있는 이 시점에 세상은 흉흉하다. 대권주자들마다 핑크빛 청사진을 내걸고 민심 잡기에 혈안들이다.

이번 정권이 벌였던 축제는 이제 끝났다.

축제가 끝난 식탁에는 먹을 수도 없었던 음식들로 즐비했다고 민심은 뿔이 나 있다. 누구나 배부르고 행복한 축제의 장은 바라지도 않지만, 돌아가는 길에 허기로 배를 움켜지는 사태는 없었으면 하는게 내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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