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에 시작된 석간 신문배달은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끝이났다.

5년동안 같은 지역에 신문배달을 하며 항상 마지막으로 가는 집이 두 곳. 한곳은 돌을 캐는 광산, 그리고 한곳은 그 당시 흔하지 않은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꽃을 키우는 화원으로 기억된다.

학교가 끝나고 150여부의 신문을 들고 평균 3시간에서 5시간을 걸어 배달을 하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그리고 추운 겨울엔 그 땀이 다시 얼어 매서운 추위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 힘들었던 기억속에서 아주 따뜻하고 편안함으로 자리한 두 집. 원래는 비닐하우스에 신문을 먼저 배달하고 광산으로 가야 하는데 그 거리와 시간이 너무 멀고 오래걸려 광산을 끝으로 다녀오면 한밤중이라 무섭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광산을 먼저 갔다 오면서 비닐 하우스에 신문을 배달하곤 했는데 광산을 가면 밤에 야근을 하는 아저씨가 항상 야식을 준비 하는 시간과 겹쳐 야식냄새에 정신을 팔 곤했다.

하루는 ‘신문이요’ 하고 신문을 놓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부르시더니 준비한 야식을 덜어주시며 ‘좀 먹고 가거라’ 하시는데 그 말씀이 왜 이리 따뜻하고 부드럽고 감사 하던지.

지금 기억에 아마 고추장에 김치를 넣은 비빔밥으로 기억된다.

게눈 감추듯 밥을 먹자 ‘힘들지’ 하시며 ‘아저씨도 너 만한 아들이 있단다. 일 때문에 자주 못봐서 섭섭하지만 가끔 널 보며 위로를 삼는다’고 말씀하시던 그 아저씨, 한 끼 야식이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차려주신 아저씨의 마음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광산 다음 마지막으로 들리던 비닐 하우스가 있던 집. 음악이 흐르고 부드러운 향이 나던 집. 하루는 통마늘 같은 것들을 다듬고 있던 아주머니께 여쭈었더니 마늘이 아니라 백합꽃씨 라며 나중에 꽃피면 구경 시켜줄게 하시며 건넨 엽차 한잔,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정리되지 않은 마루의 수많은 책들….

어린 내 눈에 비친 그 모습과 아주머니의 말씀은 지금도 늘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기억의 한편이다.

신문배달을 하던 그 학생은 지금 30년 가까이 방송을 하며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배고프고 춥던 어린 시절, 내게 편안함과 아름다움의 기억을 만들어준 그 두 분을 떠올리며, 두 분의 나이가 된 나는 누군가에게 그 두 분처럼 편안함과 희망을 주고 있는가 반문 해보고 싶다.

“삶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행동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사람이 다른 것을

그저 다른 뿐 결코 틀린 것은 아닐 테지

사람이 꽃을 꺾으면 꽃내음이 나고

사람이 풀을 뜯으면 풀내음이 나고

사람이 나무를 베면 나무내음이 나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사람내음이 날까”

이채님의 ‘사람이 사람에게’ 라는 글이다. 나로 인해서 내가 하는 일에서 만큼은 희망과 행복을 전달하고 싶다.

따뜻한 엽차 한잔, 매콤한 고추장 비빔밥이 생각나는 그런 방송쟁이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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