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에 기반을 둔 체제이론에서는 체제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에 의하여 최적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항상성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에서 항상성의 기능을 하는 것이 민심이다. 정치가 독재나 당리 당론에 휩싸여서 공익을 무시하고, 개인과 정당을 위한 정당이 되면 제3의 목소리, 곧 민심이 항상성의 기능을 하여 정치의 줄기를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법칙이다. 근대사회의 시민혁명은 중세의 절대왕정으로부터 인간의 천부적인 인권을 되찾은 혁명이다. 우리의 4·19 혁명이나 6·29 민주화 운동이 그러하고 지난해 아랍 혁명을 가져온 것도 이 민심이다.

대선과 관련하여 안철수 후보의 시각이 이러한 자연과 사회법칙을 바탕으로 민심과 자기의 생각이 일치하고, 이에 의해서 정권 창출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정치란 바로 민심에 뿌리를 둔 정치인데도 그 정치의 수단이 되는 정당제도가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 민심에 등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민심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달라진다. 그러하니 조사할 때마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민심이 오락가락하니 정치인들이 민심은 자기편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거짓말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것이 민심이다. 두 사람이 술판에서 서로 때리고 욕하면서 싸운다고 하자. 민심은 그 싸움을 말리고자 달려들어서 같이 싸우지 않는다. 민심은 불구경하듯이 싸움을 보는 것이 민심이다.

양 떼가 평화롭게 노는 들판에 늑대가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늑대는 양 떼 가운데 한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양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늑대는 또 한 마리 양을 잡아먹었습니다. 역시 다른 양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들판에는 양 떼도 늑대도 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민심을 제3의 목소리로 키워서 변화의 동인으로 삼고자 하는 지도자는 민심과 같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여서는 아니 된다. 올바른 지도자는 민심을 읽고, 민심이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 뒤에 항상 함께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민심을 이끌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선거가 코앞에 와있는데 후보자들은 아직도 민심을 파악한다고 시장을 방문하고, 서민과 악수하고 있다. 지금 민심을 읽어서 한 두 달 만에 만들어진 정책이 실현가능성이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급조한 정책은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경쟁이나 하듯이 이름 있는 사람을 영입하고, 폴리페서로 정책단을 구성하는 것이 민심정치는 아니다.

민심정치는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민심을 묶어서 불을 끄도록 하는 것이다. 민심정치는 민심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이 스스로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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