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철수 후보가 대선을 완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지난 수요일(대선 출마 기자회견 날)에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라고 답변했다.

많은 사람이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 속담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고 한다. 속담대로 안 후보는 돌다리를 아주 오랫동안 두들긴 것으로 생각된다.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의 다리문화는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다. 그 주재료가 흙, 나무, 돌로 만들어져서 영구성을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안철수 후보의 말대로 불살라서 없앨 수 있는 다리, 장맛비에 사라지는 다리가 많다.

외국 여행을 하면 다리가 명물인 곳이 많이 있다.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타워브리지, 호주의 하버 브릿지, 미국의 골든 게이트,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폰테베치오 다리 등은 관광명물로 관광객이 꼭 지나는 곳이 되고 있다.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 “소주(蘇州)에 6천의 석교가 있고 그 아래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다닐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약 80여 기의 옛 돌다리가 복원되거나 남아있고, 진천 농다리, 영주 무섬외나무다리와 같이 소수의 유적과 전통만 남아 있다.

서울 한강에 29개의 다리가 놓여 있고, 토목공사의 발전으로 인천대교, 광안대교, 서해대교, 여수대교 등이 계속적으로 건설되고 있지만, 외국 관광객을 불러올 정도의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다리만 있을 뿐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강과 냇물이 있었지만, 옛 선조들은 다리 놓는 것에 인색했다. 이는 강을 다리로 극복하여 외부와 연결하기보다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자연의 요새로 생각하여 영구적인 다리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신 불사를 수 있는 외나무다리를 놓고, 강물이 불어나면 물속으로 사라지는 징검다리로 대신하고 있다. 지난달 파주 임진강 장남교 다리 건설 현장에서 다리 상판이 붕괴하여 14명의 사상자를 냈다. 군사적인 이유로 다리를 쉽게 파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한다.

다리는 만남과 이어짐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우리에 있어서 다리는 이어짐보다는 헤어짐의 상징이 되고 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음력 칠월 칠석 밤에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오작교는 만남의 다리이지만 만나서 흘리는 눈물이 비가 된다고 전해진다.

죽은 사람을 모시고 가는 상여는 다리를 건널 때 아홉 번 뒤 물림을 함으로써 석별을 아쉬워한다. 부산 영도다리는 6.25 피난민의 눈물과 한의 다리이다. 가수 주현미의 히트곡인 ‘비 내리는 영동교’도 이별을 이야기 한다.

이처럼 우리에 있어서 만남과 어어짐의 상징이 되어야 할 다리가 이별과 헤어짐의 상징이 되는 것은 한국인의 가슴에 있는 한이 없어지지 않은 탓이요, 마음이 열려지지 않은 탓이고, 칸을 막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주자들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하면서, 지역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지역 간 다리를 놓겠다면서 외나무다리를 놓고 다리위에서 싸우는 격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강을 건너는 다리 이외에 벌어진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성별 간, 남북 간 틈을 이어주는 다리가 필요하다. 원수가 만나는 외나무다리가 아닌 만남과 이야기가 있는 튼튼한 다리를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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