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전통시장의 재발견<5>음성 무극시장

“아 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는 돌떡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넘어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이들의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흥겨운 동요 한자락에 충북 음성의 오랜 역사가 담겨져 있다. 예로부터 담배와 고추의 산지로 이름이 나 장사꾼이 장날마다 모여 흥정의 목소리를 높였던 곳, 바로 음성이다.

최근에는 ‘음성청결고추축제’를 통해 고추의 품질을 전국에 자랑하고 있으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음성에서도 무극저수지, 용계저수지, 금석저수지를 양편으로 끼고 돌아 가다보면 광산촌으로 이름이 났던 금왕읍에 도달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금점꾼들의 발길이 북적되면서 무극시장 또한 풍물소리와 흥정소리가 커져갔다.

해방기부터는 채금량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고 열기를 수차 거듭했지만 결국 경영 부실로 폐광됨에 따라 흥청대던 광산촌의 열기도 사그라졌다. 그 대신 무극, 용계, 금석 저수지가 완공되면서 광산촌은 조용히 전원도시로 변모해 갔다.

무극리 장터거리도 광산과 더불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물화의 교역도 활발치 못하고 5일장과 10일장으로 예전의 모습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1770년 동국문헌비고에 ‘무극장’ 기록

‘무극시장’은 충북 음성군내 9개 읍·면 중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면서 8월말 현재 2만2천563명의 인구로 집계된 금왕읍에 위치해 있다. 2008년에 이미 2만명을 넘어서면서 음성읍을 추월한 곳이 금왕읍이다.

무극시장은 ‘무극장’으로 1770년(영조 46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기록돼 있고, 1872년(고종 9년)에 제작된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에도 기록돼 있다.

이밖에 각종 문헌을 근거로 하면 1770년대 이후 5·10일 정기시로 지속되다가 1929년 ‘조선의 시장경제’에 따르면 1·6일 장으로 변경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1938년 ‘조선의 시장’기록 이후 다시 5·10일 장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장터는 1930년대 전까지는 금왕읍 무극1리 장터거리에서 열렸으나 이후에는 금왕읍 무극리 무극교 부근으로 이전됐다.

무극장은 과거 충주목 금목면에 속한 무극리에 열렸던 장시다.

위치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로 동쪽으로는 충주 지역, 서쪽으로 음성군 맹동면, 남쪽으로 음성군 음성읍, 북쪽으로 음성군 생극면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지역 등 서울로 통하는 도로 교통의 주요 지점에 있어 장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09년에 발간된 ‘한국충청북도일반’에 의하면 무극장은 주막 10개소, 노점상과 보부상이 16명, 장날 모이는 인구가 800명 정도이고 장날 거래액은 500원 정도로 주요 매매물은 쌀, 보리, 콩, 소 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때 전국 금생산량 86.9% 차지…후광 톡톡

1999년에 발간된 ‘금왕읍지’ 기록에 의하면 무극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무극광산은 1891년 금왕읍 용계리에서 중국인이 발견한 사금을 1913년 일본인이 채광권을 인수해 금광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가 무극광산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엄청난 금을 생산함으로써 무극광산 주변 마을이 발전하게 되면서 무극장도 크게 발전했다.

일제시대를 거쳐 1953년 대명광업개발이 인수해 1956년 299.382㎏의 금을 생산했고, 1993년까지 무극(영풍광업)과 금왕광업소가 옛 명성을 지키며 전국 금생산량(1천438㎏)의 86.9%를 차지했고, 은생산량도 전국 생산량(4천712㎏)의 35.7%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는 수지 채산성 문제로 금 생산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937년에 발간된 ‘음성읍지’에 따르면 무극장 장날 거래액은 3천825원 정도로 연중 거래액은 약 27만5천451원으로, 주요 매매물은 쌀, 콩, 어물, 소 등이었다. 당시 무극장의 장시권은 음성장, 용안역장, 감곡장, 덕정장, 맹동장, 진천장 등이다.

1976년 무극장을 이용한 일반 이용자는 750명, 고정 상인은 70명, 이동 상인은 140명 등이었고, 소의 출장 두수는 60두, 1일 거래 금액은 510만원 정도였다. 1980년대 말에는 무극장의 시장권이 크게 확대돼 면적 292.30㎢에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5만4천902명이었고 시장권의 인구 밀도는 ㎢당 188명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1990년대 중반에는 장터거리의 이동 상인들이 의류, 채소류, 생선, 기물, 잡화, 과일 반찬류, 음식 등을 판매했고, 무극장의 이용자는 주로 금왕읍 주민들로 농·축산업, 서비스업, 회사원, 주부들로 일부 주민들은 인근 음성장이나 장호원장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젠 혁신도시가 희망이다

현재 무극시장은 금왕읍 무극리 235 일원 무극교와 금왕공용버스터널 부근으로 점포 140곳과 노점 100곳이 시장을 형성한다.

부지 면적은 1만879㎡, 건물 연면적은 8천660㎡이며, 매장면적은 5천443㎡ 규모로 이뤄져 의류, 식품, 잡화 등이 주요 거래 품목이다.

금광의 후광으로 활황의 시대를 걷던 무극시장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께 폐광이 되면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인근 대소면에 중부고속도로 음성I.C가 개통되면서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다시 중흥기를 맞았다.

앞으로 인근 맹동면에 조성 중인 충북혁신도시가 준공되면 다시 한번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게 장터를 찾는 이들의 희망이다.

▶흙 마당 옛 장터가 그립다

지난 15일 무극장날 시장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신흥지업사 대표 신웅기씨(73)와 삼덕한약방 대표 류재경씨(75)가 한약방에 모여 시장 얘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장 역사와 현황 등을 짚어 본 두 사람은 회상에 젖기도 했다.

50년간 무극시장을 지켜왔다는 신씨는 “1960~1970년대 금광이 한창일 때가 지금보다 시장이 더 풍성했던 것 같다”며 “지금이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도 흙 마당에 펼쳐지던 옛 장터가 그립다”고 말했다.

44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무극시장을 지켜온 류씨 또한 “장터를 끌어 들이려고 이 골목 저 골목 점포 상인들이 다투던 일이 눈에 선하다”며 “이제 국가에서 비가림 시설도 해 줘 시장으로써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옛 시절 음성, 삼성, 대소 쪽에서 줄을 길게 서서 고갯길을 넘나들던 장꾼들의 하얀 옷 검은 머리 물결이 떠오른다며 회상에 잠긴다.

이어 현실로 돌아와 농협 하나로마트를 포함해 중형마트 4곳이 성업하고 있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장꾼들 발길이 지나고 있는 장바닥에 시선을 한참 동안 멈추고 있다.

▶그래도 무극시장은 잘 나간다

최근 무극시장은 2005~2009년까지 국비 등 3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아케이드, 주차장, 화장실, 다목적사무실에 대한 시설현대화 사업을 실시해 우천시에도 정상적으로 장이 설 수 있게 돼 활성화의 큰 계기가 되고 있다.

전통시장이 요즘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무극시장은 사람들이 북적대며 제법 시장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공용터미널 아래 금왕농협쪽 골목으로 들어서나 무극교 응천 제방 쪽으로 들어서도 장날이면 늘 사람들 어깨와 장바구니를 스치게 된다. 지금은 동물시장 등 옛 시장의 특색은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뻥튀기 아저씨도 있고 길게 나무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먹는 순대국밥집은 아직도 장꾼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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