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이 만난사람 / 권태호 서울고검 검사
김정원이 만난사람 / 권태호 서울고검 검사
  • 김정원 기자
  • 승인 2012.08.19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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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남용, 충청인의 꿋꿋함으로 극복

제도개선 촉구·항의표시로 검찰에 남아

검찰 조직이든 죄인이든 억울함 없어야

 지방대(청주대) 출신으로 검사장까지 역임했던 권태호 서울고검 검사(59·법학박사)는 충북인들의 자존심의 상징적 인물이자 법학도들의 로망이었다.

그랬던 그가 2005년 ‘피의자 구명로비’를 이유로 춘천지검장에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전보됐다가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검찰조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이를 감내하며 통한의 울분을 삼켜야 했다. 그의 명예회복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권 검사는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인사권남용에 대한 ‘무언의 항의’ 표시로 검찰조직에 남아 의연하게 검찰의 중견간부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권 검사로부터 그 동안의 소회를 들어봤다.

▶검찰을 떠날 생각은 안 했나.

솔직히 고검검사 발령 당시 변호사를 하거나 다른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나마저 검찰을 떠난다면 인사권남용은 더 심해 질 것이고 제도개선은 요원할 것 같아 검찰에 남아 견디기 어려운 고행을 택했다. 검찰청 법에 검사장직급을 없앴다면 모든 경우에 적용하고 운용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직급이라면서 검사장 승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검사장급에서 고검검사(급)로 발령 낸 것은 강등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법무부·검찰은 물론 법원조차도 검사장에서 고검검사로 발령 낸 것만은 강등이 아니라고 하는 잘못을 했다. 특히 적법하게 강등조치를 할 수 없게 되자 편법적으로 인사권을 남용, 실질적인 강등인사를 하면서 강등에 필요한 절차 등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항의를 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검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내가 바로 그만두면 마치 큰 잘 못이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을 떠날 수 없었다.

▶언론에서는 ‘강등’이라고 보도했는데.

법무부의 주장이나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고검검사 발령은 강등이라고 할 수 없고 전보인사라고 써야 맞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이 ‘평검사 강등’이라고 허위보도를 했다. 고검에는 평검사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언론의 잘못 보도된 부문도 시정돼야 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말한다면.

2007년 다른 사건으로 기소된 지인(知人)과 관련, 대검찰청 직원에게 청탁을 했다는 것이 겉으로 표명된 이유다. 이는 음해였고 2002년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사칭 등이 있는지 문의·확인한 것이 전부다. 그 지인은 내가 문의한 것과 관련, 법적조치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문의한 것이어서 적법하게 불이익조치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됨에도 인사권을 빙자해 불리한 인사발령을 한 것이다.

▶화병이 날만도 한데.

지금은 홀가분하다. 처음엔 화병에다 폐인이 되겠더라. 이런 불명예를 당하고도 정신상태가 멀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수양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극복했다. 검찰이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내가 담당한 사건 관계자들이 억울함이 없고 검찰을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탱하게 한 힘이 됐다. 법무부는 당시 내가 조직에서 나가기를 바라면서 인사권을 남용했다. 지금까지 징계를 받지 않고 고검검사로 재직하고 있는 자체가 나의 결백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담당사건은.

1988년 서울 남부지검 특수부 검사 재직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친형인 전기환씨를 공금횡령혐의(노량진수산시장(주))로 구속한 것이다. 이 사건은 5공비리의 단초가 됐다. 그리고 병역면탈목적의 신체훼손사건, 병든 소 도축사건, 가정 파괴범 최고 형량 구형 등 수없이 많다. 서울중앙지검 근무 당시(1983년)에는 인사이동 및 충원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너덧 달 동안 월 700여 사건을 처리, 검사 두 명의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검사로서의 철학을 말한다면.

성격은 비교적 원만하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신중하게 내린 결정은 끈질기게 추진한다. 특히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한쪽 말만 듣지 않고, 양쪽 이해 당사자 모두에게 충분히 듣고 자료를 검토한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중하게 구형량 등을 결정한다. 지금도 내가 검사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늘 반문하고 있다.

▶은퇴 시점은.

퇴임과 관련한 준비는 돼 있지 않다. 새로운 분야에서 더 보람된 일이 있거나 지역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명예롭게 퇴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정년까지 근무할 경우에는 검찰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검사가 될 것 같다.

▶고향에 대한 사랑은.

나는 고향의 사랑, 기대를 많이 받았다. “지역기반이 튼튼했다면 권 검사가 이렇게 됐겠느냐”며 명예회복을 위해 ‘무언의 항변’을 지원하고 성원해 준 고향 선후배들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다. 기회가 되면 그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 특히 고향의 각별한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꿋꿋하게 견뎌왔고 충청인의 의연함과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을 견지해 왔다. 검찰에서 배우고 익힌 경험을 지역에 되돌려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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