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나이 탓인지 텔레비전의 시청시간이 늘었고 주로 주말 저녁시간에 방영되는 프로는 대체로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외우는 평소실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어서 거의 이름을 댈 수 없는 수준이다.

잘못된 사회 개그로 풍자

이 정도의 수준인 제가 오늘은 감히 여러분들에게 ‘개그에서 배우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로 했기에 좀 어설픈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미리 부탁드리는 바이다.

원래 개그란 필자의 청춘에는 없었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이기동 선생들의 1세대 코미디시대가 있었고 그 이후의 김형곤, 주병진, 심형래, 전유성 등의 2세대 코미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필자가 거론 하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코미디언들이 있었지만 기억하는 흐름만을 말씀드리는 것이기에 오해는 없으시길.

하여튼 기억나는 사실은 1세대의 코미디에서 차세대로 넘어가게 됐다고 필자가 감히 분류하는 기준은 주로 몸으로 웃기는 것에서 말로 웃기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에 있다.

필자가 분류한 시대변화가 코미디와 개그의 분수령이 된 것이라 필자는 여기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것 처럼 코미디와 개그는 관객들을 웃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구분이 쉽지 않다.

다만 코미디는 찰리채플린의 우스꽝스런 연기 같은, 주로 몸사위를 통해 웃기려는 단막희극의 일종인거 같다. 그에 비해 개그는 주로 말만으로 웃기는 걸 가르킨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근자에 들면서 이들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개그가 지닌 다른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사회풍자에 있다. 과거의 가쉽 수준에서 머물렀던 잘못된 사회의 풍조나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개그로 승화돼 웃기면서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는 부분이 개그의 가장 큰 매력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사회문제를 소재로 강연이나 집필을 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개그맨들의 사회풍자는 더 큰 교육적 효과를 지니는 것일 수도 있다.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주입시키려는 유명인사들의 강연보다 웃기면서 잘못을 지적해주니 거부감도 없을뿐더러 훨씬 기억에도 오래 남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요즘 주말의 개그프로그램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필자만의 생각인가?). 그 방증으로 개그맨들의 광고출연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예인들의 인기의 척도는 광고방송의 출연빈도와 비례한다는 필자의 상당히 무식한 근거를 기준으로 볼때 개그맨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왜 인기가 있는 것일까? 그건 유감스럽게도 사회가 질서정연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다반사로 있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사회지도자나 정치인들의 빗나간 행동들을 뉴스에서 너무나 많이 보고 듣기에, 우리들은 부조리와 무질서가 사회의 속성이며 통념인 것으로 당연시 되고 있기에, 아니면 알고 있지만 평소 울분을 토하며 말할 기회가 없었기에, 내가 얘기해도 들어주는 사람 또한 없었기에, 개그맨들의 입을 빌어 웃음과 함께 꼬집어주기에 인기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거부감 없어 기억에 오래 남아

이러한 사회풍자적인 요소들 덕분에 많은 개그맨들이 요즘 인기와 함께 명성과 부를 누릴수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많은 사회적인 압력에도 노출이 돼 있다.

 유명한 몇사람은 외부적인 압력에 의해 상당히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자세가 많은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지식인일수록 사회의 통념에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부조리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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