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쓴다는 것은 움직임(動)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마음이 움직일 때 비로소 몸이 반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마음에 따라 자연스럽기도 하고 부자연스럽기도 한 이유다. 그리고 이 마음은 우리 몸 오감 중에 보는 것과 듣는 것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할 수 있다.

움직임과 멈춤은 같은 곳에 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무섭거나 악한 것을 접할 때, 더럽고 추한 것을 대면할 때 두 눈을 꼭 감고 양손으로 두 귀를 애써 틀어막는 것은 곧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가 아니겠는가.

움직임(動)의 반대는 멈춤(靜)이다. 어쩌면 멈춤이란 ‘쉬다’라는 의미 이전에 움직임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한창인 야구경기를 보면 미세한 움직임의 차이가 홈런과 헛스윙의 차이를 만들어 내더라. 타자가 스윙하기 전의 멈춤이 없었다면 홈런이 가능하겠는가. 또 당겨진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은 온몸의 움직임과 호흡마저 멈췄을 때 비로소 과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것을 봐도 동(動과) 정(靜)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곧 하나처럼 움직이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잘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잘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은 진리다.

내 몸의 편안한 휴식도 눈과 귀를 잠시 멈추게 하는 잠(熟眠)에서 찾을 수 있지 않던가.

어쩌면 우리네 삶이 잠시도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멈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건강한 몸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쉬게 하는 명상(瞑想)을 하자고 제안한다.

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을 쉬게 하는 명상을 해 보자. 청각과 시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로소 오감이 제대로 순응하며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참 휴식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동(動)과 정(靜)은 같은 곳에 있고 그 시작과 끝이 항상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정(靜)을 찾지 못해서 잠시도 쉼이 없으니 불안(不安)과 불면(不眠)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칠정(七情)이 꼬리를 무는데 어찌 마음이 평안할 것이며, 꿈이 없는 양질의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멈춤(靜)으로 불안과 불면은 해결될 수 있다. 죽음 같은 긴 멈춤이 아니라 움직임에 비하면 찰나(刹那)에 지나지 않을 만큼의 멈춤이면 충분 할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잠을 못자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을 한다. 처음 얼마간은 수면유도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수면제도 듣지 않는 상태로까지 병세가 악화된다.

이런 환자들에게 마음 치료인 명상과 함께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치료를 병행하게하면 병세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많이 목도해왔다. 치료의 근본인 마음에 평안을 찾을 방법을 찾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병이기에 가능한 치료법일 것이다.

명상,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

막연히 한방치료가 양방치료보다 우월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치료란 원인과 결과를 함께 생각하며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런 맥락으로 마음병 중에 감정과 생각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효과를 점할 수 있는 질환들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무더운 여름 산해진미만을 보양식으로 몸에 담을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명상과 멈춤(靜)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기운 돋게 하는 좋은 보양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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