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가정 형편 때문에 군것질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으로 과자나 사탕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엿장수의 가위소리에 엿과 바꿀 수 있는 고물이라도 없나하고 집안을 뒤져보지만 고무신조차 때워서 신던 처지인지라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학교 가는 길목에는 문구를 파는 잡화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한 상점의 주인에게 개구리를 잡아다주면 과자나 사탕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아들이 몸이 약해서 개구리의 뒷다리를 삶아서 먹인다는 것이었다. 냇가를 뒤져 많은 개구리를 잡아가면 사탕 한두개를 주는 정도였지만 그만한 노력을 아낄 처지가 아니었다. 몇 번인가 개구리 덕분에 사탕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 그 상점이 단골이 되었다. 그저 단골이 되는 것은 괜찮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 상점의 주인은 아이들에게 외상까지 주며 구매를 부추겼다. 부모님께 혼이 날 것이 두려웠던 나는 외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외상으로 장난감을 사기도 했고, 외상으로 만화책도 읽었으며, 군것질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려웠던 마음이 차츰 무디어져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일찍 집으로 오시더니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고 나가시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말도 못하고 그저 따라가는데, 다름 아닌 그 상점의 방향이었다. 이제는 큰일이다 싶었다. 외상한 사실이 들통 난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 말씀을 어긴 것도 후회가 되었고, 어린아이를 꼬여 외상을 주고는 부모에게 일러바친 상점 주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다음에 닥칠 사태에 두렵기만 했다.

나를 끌고 상점에 들어선 아버지는 “이 아이 외상값이 얼마요?”하면서 외상값을 지불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다시 나를 끌고 집으로 오시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죽도록 혼나겠지 하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내 손목을 놓으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들어오란 말씀도, 들어오지 말란 말씀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는 어정쩡하게 문 앞에 서 있다가 담 밑에 쪼그려 앉았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후회막급이었다. 얼마동안 그렇게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척에 벌떡 일어섰는데 어머니셨다. “들어가서 밥 먹자” 하시는 어머니 눈에 이슬이 보였다. 울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하는 아버지의 조용한 말씀이 들렸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할 즈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을 사랑하되, 속 깊은 정을 줘야 한다. 자칫 자식이 귀엽다하여 오냐 오냐하면 자식을 버린다.”

오늘은 내가, 결혼한 딸과 사위에게 아버지의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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