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도 몇몇 친구의 아이들이 결혼했다. 혼기가 꽉 찬 두 아들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두렵기까지 하다. 빈 몸으로 시작했던 우리세대와는 천지차이다. 딸을 둔 집은 혼수와 예단을 걱정해야하고 아들을 둔 집에서는 살림집 마련해줄 걱정에 허리가 휜다.

과시를 위한 혼수·예단 없어야

이렇게 부모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결혼했으면 잘이나 살아주면 그나마 고마울 텐데 일 년을 못 넘기고 헤어지는 부부도 많으니 이 또한 걱정이다.

얼마 전 딸을 시집보내면서부터 예단문제로 잡음이 일던 친구는 결국 딸을 이혼시켰다고 슬픔에 잠겨있다. 예전부터 ‘사’자가 붙은 사위를 얻으려면 열쇠 세 개를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세 개도 부족한 모양이다. 딸 가진 부모, 아들 가진 부모 할 것 없이 혼사를 치루는 것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요즘은 양가 부모가 함께 예복을 맞춰 입는 것도 예식의 일부처럼 돼 있는 모양이다. 한술 더 떠 아이들 웨딩 사진을 찍을 때 부모님 웨딩사진도 찍는다고 하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예단비용으로 돈이 양쪽 집으로 왔다 갔다 하고 많다느니 적다느니 시비가 오간다. 시부모 이불에 반상기에 은수저도 보내야 한단다. 나는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은수저는 애물단지다. 며칠 쓰지 않으면 검게 변해서 녹을 닦아내는 것도 번거로운데 잘 쓰지도 않는 은수저 반상기가 꼭 필요한 것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결혼이란 집안과 집안이 연을 맺는 일이라지만 아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정을 꾸리고 책임을 갖는 일이다. 이제 부모들은 혼사에서 한 발 물러서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잘 가르쳐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켰으면 부모의 역할은 다 한 것이고 제 가정은 제가 꾸려나가는 것이다. 공연히 부모의 체면이나 과시를 위해 노후를 위해 준비한 돈까지 털어줄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결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어렵게 취직을 하고 나면 벌써 결혼 적령기가 훌쩍 넘어 있고 모아둔 돈도 없으니 어찌 쉽게 결혼을 결심하겠는가. 저출산의 문제도 우선 결혼을 해야 해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을 하겠는가 말이다.

혼수니 예단이니 하는 잘못된 결혼 풍습이 젊은이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백년가약을 맺었어도 한 평생 서로 보듬으며 우리를 잘 기르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단칸방에 둥지를 틀어도 사랑이 있다면 훌륭한 가정이 이뤄지는 것이지 큰 집에서 호화롭게 시작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진데 요즘 세상이 그렇게는 못 사는 것이라니 씁쓸하다. 빈 몸으로 시작해서 일어나기까지 힘이 들긴 하다. 몸을 도끼삼아 집안을 일으키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기에 내 자식만큼은 좀 더 여유 있게 시작하게 하고 싶어지는 부모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풍족하다면 많이 줘도 좋겠지만 주변 이목 때문에 형식을 갖추려는 것인데 과감히 쓸데없는 풍습은 버려야할 때도 되지 않았나싶다.

뒷전으로 밀려난 사랑 안타까워

일본의 결혼식장은 축하객이 3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예식이 시작되면 출입문을 닫고 조용히 식이 진행된단다. 가까운 친구와 친지들만 모여 진지한 예식이 치러지는 것이다. 우리의 도떼기시장 같은 예식장과는 거리가 있는 풍경이다. 품앗이라는 축의금 또한 오래도록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 중의 하나다. 축의금 받지 않는 정치인, 간소하고 조용한 결혼을 치르는 지도층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한 표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성한 結婚이 돈으로 얼룩져 사랑은 뒷전이 돼버린 혼이 빠져버린 缺魂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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