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는 세상[김승환 책읽는청주 도서선정위원장, 충북대 교수]
핸드폰 없는 세상[김승환 책읽는청주 도서선정위원장, 충북대 교수]
  • 충청매일
  • 승인 2012.06.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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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 불빛이 보였다. 십 리쯤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정 무렵 차가 서 버린 것이다. 사진을 부전공으로 하는 나는 터널의 장면에 취해서 전조등 켜 둔 것을 잊어 버렸다.

좌우대칭의 기묘한 불빛을 잡기 위해서 이리저리 삼각대를 옮기다가 손가락질과 욕설을 들은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깊은 밤 터널 속에서 삼각대를 놓고 빛의 양을 측정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어느 운전자가 화를 내지 않겠는가!

겨우, 몇 장면을 얻었다고 만면에 득의의 웃음을 안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차’ 싶어 확인을 해 보니 전조등을 켜 두었던 것이다.

난감했다. 산행을 마친 후, 손을 흔들어 차를 타는 적이 많으므로 나는 도로에 나가서 손 흔들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웬일인가? 이십여분이 지나도록 세워주는 차가 없었다. 달도 없는 야밤에 어떤 운전가가 차를 세워 주겠는가?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되고 원망이 가슴을 치고 밀려왔다. 손전화만 있었더라면 늦어도 15분 안에는 해결될 일이다. 요즈음에 차 방전의 문제는 15분 안에 해결이 된다. 그래서 바라본 불빛까지는 대략 2㎞쯤 돼 보였던 것이다. 다행히 등산화를 신고 있어서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었으나 이것은 또 웬일인가? 반쯤 다가갔을 때 꺼지는 것이 아닌가? 공연히 화도 나고 또 낙담이 되었다. 어쩐다?

그래도 방법은 없었다. 거기서 다시 또 2㎞쯤에 보이는 또 다른 불빛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웬일인가? 열두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200여m를 남겨두고 그 불빛마저 꺼지는 것이었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기 쉽지 않았고, 작은 일이지만 낙담과 절망의 강도는 심각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뛰다시피 당도해 보니 공장이었다. 이런 곳에 이런 공장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거니와 방법은 단 하나,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치는 것뿐이다. 얼마간 소리를 치면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분이 이 야밤에 무슨 소란이냐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딱하다는 듯이 그리고 왜 핸드폰을 놓고 왔느냐는 말과 함께 보험회사의 긴급호출로 전화를 걸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간단치가 않았다. 본사의 상황실에서 괴산의 근무 가능한 곳에 연락한 다음 그곳에서 확인 전화를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들은 손전화의 전지가 다 소모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한 다음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밤에 터덜터덜 걸어오는 심사는 그믐달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다짐했다. 내일 당장 손전화를 사야겠다고.

충북 괴산의 유평터널 추억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손전화가 없다. 몇 분들이 사 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실제로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을 등록까지 해서 주신 분도 있지만 곧 반납을 했다.

그래서 닥치는 상황은 언제나 ‘두근두근’이다. 손전화를 묻는 말에 ‘없습니다’, 또는 ‘없는데요’라고 답하면 이상하다는 눈빛을 넘어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는 수도 있다. 무슨 비밀이 있어서 그러냐는 분도 계시고 외국에서 왔느냐고 묻는 분도 계시다. 이처럼 손전화가 없어 마주칠 사건으로 인해 나는 언제나 ‘두근두근’ 하다.

내 딴에는 자본과 과학의 독재에 저항하는 정신이 있지만 어렵고 불편하기가 한량없다. 손전화가 없어 좋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손전화를 없애고 살아보실 것을 권한다.

견딜 수 없이 불편하지만 비길 데 없이 행복하다는 것을 곧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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