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곡계굴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 조병규 단양곡계굴희생자대책위원장이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 입구에서 한국전쟁 당시 참혹한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2리 느티마을.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 안은 태화산의 물줄기가 굽이쳐 휘돌며 남한강의 절경 북벽을 만들고 아름드리 나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마을을 품어주는 인심 좋고 그림 같은 곳. 나지막한 담 너머로 아직도 어머니의 정겨운 음성이 들릴 것 같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 평화스런 마을의 뒤편 동굴엔 아직도 그치지 않은 피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부모, 형제들의 명예회복과 영혼을 달래주지 못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에서 6대째 살아온 조병규씨(66·단양곡계굴희생자대책위원장)는 매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 돌아오면 통탄의 한숨에 식사는 물론 잠조차 이루지 못한다.

조 위원장은 한국전쟁 당시 마을 뒤편 곡계굴에 숨어 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할아버지, 고모, 동생 등 4명이 숨졌다. 

지난해까지 대책위원장을 맡아왔던 고 엄한원씨는 한국전쟁 당시 17세 나이에 피란을 가지 못해 식구들과 동네 근처 곡계굴에 숨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어머니와 동생 다섯, 친척 등 11명이 숨졌다.

지난 23일 느티나무가 울창한 상리마을 입구 그늘아래 들마루에서 만난 조 위원장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당시 전쟁 참화를 기억해 냈다.

1951년 1월 20일.

단양군 영춘면과 강원도 영월군 주민 400여명은 남쪽으로 피란가다 길이 막혀 단양군 영춘면 상2리 ‘곡계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때 조 위원장 식구들도 피란민들과 함께 굴에 몸을 피했다고 한다.

다음날인 21일 오전 10시께 미군비행기 4대가 갑자기 피란민들이 몸을 피해 있는 곡계굴을 향해 폭격을 가했다.

굴에 숨어 있던 피란민들은 흰옷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흔들며 피란민임을 알렸지만 비행기에서 무차별 폭격은 계속했다고 한다.

이날 곡계굴을 향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은 16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 폭격으로 “굴에 몸을 숨기고 있던 피란민 360여명이 불에 타 죽거나 질식해 숨졌다”고 조 위원장은 주장했다.

유족들은 “미군의 비행기 폭격 당시 숨이 막혀 동굴 밖으로 뛰쳐나간 주민들을 향해 비행기에서 기관총 집중사격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미군이 피란민이 있는 동굴(곡계굴)을 향해 사용한 폭탄은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네이팜탄’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충격을 줬다.

‘네이팜탄’은 월남전에서 사용한 폭탄이다.

이 폭탄은 휘발유에 나프텐, 팔미데이트를 혼합해 만든 것으로 폭파 후 3천도의 고열을 내는 살상무기다.

특히 이 폭탄은 떨어지는 반경 30m 이내는 불바다가 되고 이 일대 산소를 고갈시켜 사람을 타죽게 하거나 질식해 죽이게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군은 한국전쟁 중 3만2천여t의 엄청난 량의 네이팜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미군은 산악지대인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예천, 강원도 영월 지역을 대상으로 작전명 ‘싹쓸이’(wiping out)로 단양과 예천사이 지역 75%를 초토화 시켰다.

이 같은 사실은 2007년 4월, AP통신이 미국의 해제된 문서를 통해 “1951년 1월 20일 미군 전투기가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에 몸을 숨기고 있던 피란민을 향해 ‘네이팜탄’을 투하해 이 굴에 있던 피란민 300여명이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전쟁 중 미군의 네이팜탄 사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AP통신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 현장 6곳의 희생자 수는 충남 아산 둔포(300명)와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가 흘렀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현재까지 민족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6·25전쟁 중 야만적인 학살문제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상황’ 이라는 논리로 방치하거나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유도 모른 채 희생당한 유족들은 반공이 국시가 되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피눈물을 삼키며 그날의 아픔에 대해 숨죽이도록 강요받았다.

지난 참여정부시절 열린우리당 주도로 만들어진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실규명 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 단양곡계굴 유족들을 찾았다.

유족들은 “60여 년 간 한 맺힌 억울함을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동안 빨갱이로 몰릴까봐 숨을 죽이며 죽은 목숨으로 살아왔다”며 눈물을 훔치며 진실이 밝혀지고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구인 진실위는 2005년 발족된 뒤 활동 4년2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조사활동을 마쳤다.

그동안 진실위가 조사를 벌인 단양 곡계굴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6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와 연좌제의 차별 속에 숨죽이면서 살아온 유족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진실규명만 됐을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진실위의 진실규명 결정의 권고사항은 말 그대로 ‘권고사항’에 그치고 만 것이다.

곡계굴 유족들은 “차라리 시작을 하지말지, 그동안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아픈 상처 다 들춰내고 이제 와서 ‘진실규명’결정만 내리면 달라지는 게 있느냐”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가족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병규 단양곡계굴희생자대책위원장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와 함께 정부를 대상으로 진실규명과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가 무정부 상태도 아닌데 미군의 소행이라며 정부가 발을 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로 국회특별법 제정에도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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