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의 노래’를 찾아서(3)
‘사공의 노래’를 찾아서(3)
  • 충청매일
  • 승인 2011.12.2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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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한때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던 함효영 시인(왼쪽) 1958년 재개봉된 ‘승방비곡’ 포스터. 여배우 엄앵란의 얼굴이 돋보인다.

“아직 백일기도가 끝나지 않은 어느 날 밤이었다. 내가 홀로 고요히 누운 어두운 방에 한개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영일아, 이 검은 그림자의 주인은 누구이겠느냐. 그것은 곧 방주 해암이었다. 너의 스님이었다. 그것이 곧 네가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 온 너의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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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이상이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일 만할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해암이 정해주는 비밀한 곳에서 빛을 등지고 일곱 달이라는 어두운 세월을 보냈다. … 그리하여 강보에 싸인 피묻은 생명은 해암의 지시대로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두운 새벽 쓸쓸한 절 마당 한 귀퉁이에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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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그 뒤에 나는 어떤 경로를 밟아서 은숙이를 낳게 되었을까. … 비밀한 사랑의 씨를 남몰래 낳아서 남모르게 내버린 그때도 나의 집 어머니와 아버지는 알았지마는 나는 어떠한 시골로 가서 이미 받은 마음의 상처를 고치는 동안에 다시 나는 여자로서 부활하게 되었다. 지금의 은숙이 아버지인 김씨에게 재가를 하게 되었다. 그리해 김씨의 정중한 사랑의 씨로 은숙을 낳게 되어 묵은 상처도 차차 감추어질 때에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 것이다.

영일아 그 후로 나는 꽃피는 봄, 벌레 우는 가을, 비 내리는 아침, 바람 부는 저녁, 운외사에서 쓸쓸하게 자라나는 너를 생각하고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 그 얼마나 많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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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는 장차 깨어질 너희들의 행복을 실은 자동차의 나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아, 너희의 앞길은 아직도 멀다. 부디 굳세게 살아다오….  이것이 길이 가는 어미의 마지막 청이다.”

결혼식장으로 떠나는 김씨집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를 들으면서 유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30년 이구영 감독의 동양영화사에서 영화로 제작된 이후, 1935년 ‘삼천리’지에 재수록 되었고, 동양극장에서는 대표적인 신파극의 레퍼토리로 반복 공연되었다. 1958년 윤봉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재개봉되었는데 성소민, 김신재, 정민, 엄앵란, 이룡 등이 출연했다. 홍보 포스터에는 당시 22세였던 엄앵란이 가장 돋보이게 그려져있다.  

한편 ‘사공의 노래’를 비롯한 많은 시와 소설 등을 쓰며 활발하게 문단활동을 했던 함효영은 30대 중반에 서울에서 결혼했다. 개성 태생 부인 서진순 여사와는 9살 차이였다. 주례는 안재홍 선생이 섰다.

함효영은 중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사업에서 수완을 발휘하였다.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모터사업을 했다. 일본 도시바에서 모터를 사들여 국내에 파는 사업이다, 상호는 ‘도시바 코리아’였다. 사업때문에 1930년대에 인천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는 인천에 살면서 인천 문단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시와 산문’ 동인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해방 후 인천에서 몇차례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인천 갑 선거구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했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때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던 기록이 ‘인천시사’의 정치편에 남아있다. (‘알려지지 않은 또 한명의 문인 함효영’ 인천문협회장 김윤식 시인, 2007년 7월 29일, 기호일보)

함효영은 1947년 3월에 인천시공관에서 황해도 출신들이 모여 황해회 인천지부(1966년 인천지구 황해도민회로 개칭)를 결성했을 때 지부장에 선출됐었다. 그가 인천에 대학 설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기록도 있다.(대중일보 1949년 9월 22일) 그는 1988년 83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3남 함태헌씨가 아버지의 문학적 작품에 관심이 있고 경제적 능력도 있어 경포호숫가에 시비를 세웠으니 큰 효도를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강릉으로서는 귀중한 문화적 유산을 갖게 되었으므로 널리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이 노래의 작사자와 시를 짓게된 사연 등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게되니 노래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사공의 노래’가 다시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명가곡으로 크게 떠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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