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매서운 추위가 또 찾아왔다. 작년 이맘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안동발 구제역 소식을 듣고 경북과 통하는 길목마다 긴급히 방역초소를 설치했다. 초기에 설치한 25개소의 방역초소는 일찌감치 얼어붙기 시작했다.

공공의 일 위해 박봉에도 최선

긴급히 소독약을 배부하고, 안동과 관련된 역학조사가 시행됐다. 가축시장도 문을 닫은 가운데 축산 공동시설은 매일 소독을 했다. 이후로 들불처럼 번진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충북도 12월 한 달을 잘 버텨 왔으나 인접한 여주와 천안 쪽으로 봇물 터지듯 밀려 들어왔다. 공무원과 축산농가는 물론 도민 모두가 참 힘들었던 겨울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은 처음으로 구제역이 신고된 날이었다. 구제역이 신고되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곳은 현지조사반과 초동방역반이다. 현지조사반은 행정기관과 축산위생연구소 방역관이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검사용 시료채취와 초기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초동방역반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담당한다. 신고농가의 길목을 차단하고 검사결과가 나올 때 까지 24시간 밤새워 차량통제와 이동제한, 소독을 담당한다. 다행이 구제역이 아니라면 철수하겠지만 구제역이라면 기약없이 통제하며 살처분 현장을 지원한다.

방역지원본부에서는 평상시에 구제역과 AI를 포함한 5대 가축전염병 예찰을 담당하고, 검사에 필요한 시료를 채취하며, 농가 예찰과 지도·교육을 담당한다. 충북도내에는 15명의 방역사가 각각 시군을 담당하고 있다. 하루 일과의 처음과 끝이 축산농가를 방문하는 고단한 일이다. 피를 뽑기 위해 무모한 가축과 힘겨루기를 해야하며, 대략 깨끗하지 못한 축사를 드나드는 곳이 그들의 일터이다.

이들은 공공의 일을 하면서도 박봉을 받는 음지의 사람들이다. 가축과 실랑이는 예사겠지만 때로는 농가와 의견 다툼으로 곤혹을 치른다. 그러나 이들이 있기에 전염병의 동향을 쉽게 알 수 있고, 이들이 있기에 농가와 일일이 대면하며 방역 주의사항과 조치사항을 지도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업무는 늘어나지만 이들의 노고는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2월 4일, 젊은 가축 방역사가 순직하였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브루셀라병 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귀표 번호를 확인하러 축사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경력 8년차의 방역사는 또 다른 임무를 위해 서두르다 무자비하게 밀어붙이는 황소에 받혔다. 어찌나 힘이 세었던지 간과 십이지장, 췌장이 손상되어 복부 내출혈을 일으켰다. 어떤 장기는 일부를 도려내고, 어떤 장기는 전부 적출하는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상태 악화로 서울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마흔이 넘어서 겨우 새 신부를 만나 결혼날짜까지 잡았다. 행복한 결혼은 기약없이 연기했고, 끝내 순직하는 바람에 분홍빛 사랑의 연가는 죽음의 비통한 운명으로 엇갈렸다. 누가 보아도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다 순직하였음에도 예우조차 없는 그의 운구 행렬은 쓸쓸했다.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길게 따르는 동료들의 어깨가 절망감으로 쳐졌다.

고귀한 희생 정신 새기자

올 겨울은 구제역도 없고 조류인플루엔자도 없는 따뜻한 겨울이 되길 소망했다. 가축방역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방역지원본부 소속 방역사도 한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젊은 방역사의 순직으로 모두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동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해본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남은 자의 몫이 되었다. 비록 음지에서 일하지만 다함께 심기일전하고,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은 동료와 축산농가의 마음에 영원한 여운으로 남길 기원해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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