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령도의 심청각 (오재헌 작가 사진·왼쪽)과 효녀 심청 상(像).

지난 달(2011년 11월) 백령도에 처음 다녀왔다. 큰 맘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백령도는 울릉도, 독도만큼이나 한번 가려고 맘 먹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나는 울릉도에는 대학 1학년 때인 1972년에 혼자 간 적이 있는데 그 후론 가보지 못했다.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백령도는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서해 최북단,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어서 오가는 길에도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사실이다.

백령도는 1995년부터 인천광역시에 속하게 됐지만, 당초엔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었고, 해방 후 남북이 38선으로 나뉘면서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됐었다.

백령도의 주민등록상의 거주 인구는 5천87명(2011년 6월말 현재)이다. 해병대 등 군이 주둔하고 있어 실제로는 이보다 많다. 자체로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지 않은 섬이다. 크기로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14번째. 주민의 75%가 농사를 짓는다. 한해 농사 짓는 쌀로 3년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쌀이 많이 생산된다.

인천항에서 오고 가는데 약 10시간 가량 걸렸다. 인천에서 가는데 4시간 반. 오는데 5시간 반. 오는 날엔 풍랑이 높아 시간이 더 걸렸다.

백령도는 두무진 해안의 기암괴석도 아름다웠고, 한때 군 비행장으로 이용되었던 4㎞가 넘는 광활한 사곶해변도 인상적이었다. 원산의 명사십리보다 조금 더 길다고 한다.

또 말 그대로 콩만한 작은 자갈들로 이뤄진 장장 2㎞에 걸쳐 있는 콩돌해변도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렇게 작은 자갈들로 어떻게 그처럼 긴 해변이 형성됐는지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자갈들로만 형성된 해변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 콩돌 해변만큼 희고 붉고 검은 형형색색의 콩알 또는 작은 밤톨만한 돌들로만 돼 있는 긴 해변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누구나 한 줌 호주머니에 집어 오고 싶은 욕심이 생길 듯 싶었다.

우리 일행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46용사들의 위령비를 참배한 뒤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오래된 113년 역사의 중화동 교회를 둘러보고 콩돌해변으로 향했는데, 해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 겸 안내를 하는 기사분의 말이 재미있었다.

“여기의 돌을 갖고 나가면 3년간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3년 재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라고 겁을 준다.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심리전이다. 여름에는 자갈찜질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인당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 심청각

백령도에 효녀 심청을 기리는 심청각과 효녀 심청 상(像)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심청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설화 속의 인물이다.

백령도는 북한땅인 황해도 장산곶에서 남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있는데,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효녀 심청이 공양미 3백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다. 인당수는 옛부터 물살이 세기로 이름난 곳이다.

심청은 공양미 3백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봉사인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항해의 안전을 위해 용왕에 바칠 처녀 제물이 필요한 뱃사람들에게 그 값에 자기 몸을 팔고 거친 인당수에 뛰어든다.

심청각은 인당수를 멀리 내려다보는 이 섬 북서쪽의 높은 언덕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앞에 심청이 거센 바닷물에 몸을 던지는 형상의 효녀심청 상(像)이 서있다.

백령도 남쪽에 있는 연봉바위도 효녀 심청의 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진 사연에 감동한 용왕이 심청을 연꽃에 태워 다시 바다위로 보냈는데, 그 연꽃이 바로 백령도 남쪽 연화리 앞바다에 있는 연봉바위 근처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심청전은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대, 작가 미상의 우리 고전 소설이다.

심청전의 배경이 된 황주가 중국 송나라 시대의 지명이라는 등 여러 이설이 있으나 대체로 황해도 황주와 인당수가 소설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심청전은 뱃사람들이 임금에게 바친 연꽃에서 나와 왕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봉사들을 모으는 봉사 잔치를 벌이며 이 자리에 온 심봉사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을 만나자 반가움과 놀라움에 눈을 번쩍 뜨게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고난과 불행을 넘어서서 새로운 행복한 세상을 맞는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북한 땅을 바라보는 백령도에 서 있는 심청각과 효녀 심청 상은 백령도를 알리고 효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워졌지만 심청전의 해피 엔딩처럼 남북이 불행한 분단의 시대를 극복해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행복한 시대를 하루 속히 맞기를 갈망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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