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4)
우리의 소원은 통일 (4)
  • 충청매일
  • 승인 2011.12.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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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회 우리가곡의 날 만찬장에서 (왼쪽부터 안병원 선생, 최영섭 선생, 필자, 안 선생 부인 노선영 여사, 2011년 11월 11일)

안병원 선생은 오래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선친이 가사를 잘 써주신 덕분에 작곡을 할 수 있었고 지난 수십년간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대변하는 노래가 된 것에 작곡가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 노래가 ‘흘러간 노래’가 되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통일이 되면 제 노래가 더 이상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작곡가 안병원 인터뷰. 제목 “빨리 통일되어 흘러간 노래 됐으면…” 1990년 12월 7일)  

언젠가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선생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차라리 ‘그리운 금강산’ 같은 곡은 없었던 게 좋았습니다. 먼 훗날 통일이 됐을 때, ‘과거 분단시절 남한에서 금강산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그리운 금강산’이란 노래가 있었어’라고 회상하면서 (이 노래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만큼 통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식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 213쪽, 2011년)

안병원 선생과 최영섭 선생은 서울 음대 1년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다. 최영섭 선생이 한학년 아래다.

안병원 선생은 9남매 중 장남이다. 1926년 8월 5일 서울 태생. 영창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음역은 테너. 성악과에 다녔지만 고교시절부터 작곡 공부를 해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다.

‘우리의 소원’을 작곡하기 전, 광복 직후부터 ‘해방된 조국의 어린이들에게 우리 노래를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고 왕성하게 동요를 작곡했다. ‘우리의 소원’을 처음 부른 것도 ‘봉선화 동요회’다. 안씨가 작곡한 동요는 한때 15곡이나 교과서에 수록되었었다.

대학 졸업 후 안 선생은 경기여고, 경복중학교, 용산중학교 등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하다가 숙대 강사를 거쳐 1974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젊은 교사 시절이었던 1954년에는 한국 어린이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 48개 주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캐나다로 이주한 후에도 토론토 YMCA 등에서 합창지휘를 하고 캐나다 한인 음악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작곡집 ‘우리의 소원’을 내는 등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안 선생은 2002년 4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봉수교회에서 ‘우리의 소원’을 지휘하기도 했다.

통일의 날 판문점에서 남북합창단 지휘하는 것이 꿈

‘우리의 소원’은 사실상 국민 가곡이지만 장르상으로는 동요로 분류된다. 당초 어린이 프로그램에 쓰기 위한 동요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요는 저작권료가 다른 장르의 노래에 비해 낮다.

그래서 1990년대에 저작권협회측에서 동요로 분류되어 있는 이 곡을 다른 장르로 분류해 저작권료를 올려주겠다고 안병원 선생에게 제의했으나 안 선생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남북한 동포들이 함께 부르는 민족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한다. 그러니 그냥 동요로 놓아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소원’을 비롯, ‘푸른바람’, ‘떡방아’, ‘구슬비’ 등 동요를 주로 작곡했으며 예술 가곡도 작곡했다.

안 선생은 서울 음대교수를 지낸 성악가 박인수씨와 처남 매제 지간이기도 하다. 박인수씨의 부인 소프라노 안희복씨가 안병원 선생의 동생이다. 안희복씨는 플룻과 성악을 전공했다. 또 다른 여동생 안희숙씨는 연대 음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했다. 아버지의 예술적인 재능을 자식들이 많이 물려받은 가족이다.

2011년 11월 11일, 우리 가곡의 날 마지막 순서도 ‘우리의 소원’ 합창이었다. 이날 디너 음악회가 끝날 무렵 좌석에서 최영섭 선생이 이 노래를 선창하자 모두가 따라 불렀다. 이때 안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 뚜벅 걸어 무대로 올라갔다. 참석자들에게 모두 일어서라고 손짓을 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고 힘차게 지휘를 시작했다.

노래가 두 차례 반복되는 동안 최영섭 선생도 자리를 피아노로 옮겨 반주를 쳤다.

80대 노 작곡가 두 분의 짙은 우정의 무대이기도 했다. 안병원 선생이 참석하는 음악회의 피날레는 거의가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안병원 선생의 소원은 생전에 통일을 보는 것이며 통일이 되는 날 판문점에서 남북합창단을 지휘하는 것이다.

안 선생의 바램처럼 ‘우리의 소원’이 흘러간 노래가 될 때가 언제쯤 올 것이며, 통일된 조국의 판문점에서 남북 합창단을 지휘하겠다는 그의 소원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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