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1)
우리의 소원은 통일 (1)
  • 충청매일
  • 승인 2011.11.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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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원을 직접 지휘하는 안병원 선생.

2011일 10일 14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는 ‘K-Classic 한국 명가곡선’이란 타이틀로 우리 가곡의 밤 무대가 펼쳐졌다.

해마다 가을이면 많은 가곡 관련 행사가 열린다. 한국예술콘텐츠교육원 주최로 열린 이날 음악회도 가곡을 주제로 한 여느 음악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명 가곡과 신작 가곡을 남녀 성악가들이 번갈아 나와 불렀다. 중간에 남녀 이중창이 있었고, 맨 마지막 두곡은 혼성합창단의 순서였다. 합창곡은 작곡가 이안삼 선생이 지휘를 했다.

앙코르곡도 준비되어 있었다. 앙코르곡은 가곡이 아니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유럽의 연주그룹 시크릿 가든의 리더이자 건반연주자인 롤프 러블랜드가 작곡한 연주곡에 한경혜씨가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를 붙여서 유명해진 노래다. 관객들도 같이 불렀다.

또 다시 앙코르를 요청하는 박수가 터졌다.

이안삼 선생이 객석을 향해 말했다.

“준비는 못했지만 (앙코르 곡을 더)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곡자가 와 계십니다만…. 우리 가락에는 가곡과 예술가곡이 있고, 애창곡과 명곡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국민가곡이 있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국민가곡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겠습니다.”

앙코르 요청이 이어지면서 이안삼 선생이 그 자리에 와 계신 안병원(1926~) 선생을 순간적으로 떠올린 것 같았다.

‘우리의 소원’ 작곡자 안병삼

이안삼 선생은 이날 앙코르곡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기에 앞서 합창단 속에 섞여 함께 노래를 부르던 작곡가 진규영 영남대 교수,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이날 무대에서 ‘밀양아리랑’, ‘대관령’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러 큰 박수를 받았던 김성길 교수, ‘눈’의 작사·작곡자 김효근 교수 등을 소개했다. 이어 객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작곡가 임긍수 선생을 소개한 후 “이 자리에 ‘우리의 소원’을 작곡하신 분이 와 계십니다. 올해 84세이신데 캐나다에서 부인과 함께 오셨습니다”라며 안병원 선생을 마지막으로 소개했었다.

안병원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면서 “저기 (무대 위에 있는) 김성길 교수는 내가 경복중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의 제자”라고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침내 반주자가 피아노로 음을 맞추고 곧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모두가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휘자, 출연진, 작곡가, 합창단,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었다. 노래가 시작된 직후 지휘하던 이안삼 선생이 객석에 앉아계시던 안병원 선생께 무대로 올라오시라고 손짓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았다.

앞쪽 줄에 앉아 계시던 안 선생이 무겁게 몸을 일으켜 무대를 향해 갔다. 이안삼 선생이 급히 무대 아래로 내려와 안 선생을 부축해 함께 무대로 올랐다.

안병원 선생은 무대 위로 올라서자마자 합창단을 향해 서서 힘차게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객석을 향해 돌아서 모두 일어서라는 손짓을 했다. 관객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계속했다.

지휘를 하는 안 선생은 감격어린 표정이었다. 모든 이들이 작곡자의 직접 지휘로 ‘우리의 소원’을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감동을 맛보았다.

노래가 끝나고 긴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음악회는 그렇게 뭉클한 여운을 남기며 끝났다.

부자(父子) 합작품

흔히 이 노래의 제목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알고 있으나, 제목은 ‘우리의 소원’이다. 원래의 가사는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처음 불려졌을 때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시작 됐었다.

왜 그랬을까? 해방 2년 후인 1947년,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KBS 전신)에서 삼일절을 기념해 ‘우리의 소원’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용 특집 라디오 노래극을 만들었다. 일제 때 조국의 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은 25분짜리 노래극이었다. 가사가 “우리의 소원은 독립…”으로 시작되었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이 노래극의 대본과 작사를 당시의 이름있는 문인이요, 영화감독에다 신문에 삽화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안석주(1901~1950) 선생이 맡았는데, 바로 안병원 선생의 아버지다. 안병원 선생은 당시 서울 음대 성악과 학생이었는데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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