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눈앞의 이득만 바라다가 결국 손해가 되는 선택을 하기 일쑤다. 그 이유는 벗이 생겼을 때, 그 벗이 정직하거나 성실하거나 박학다식한 줄로만 착각하고 내면이 그렇지 못함을 알지 못한채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결국 치우치고 잘난 체하며, 아첨하는 벗과 지내다가 경제적 손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오류는 나를 살피지 않고 남을 살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식적으로 잘 모르는 남을 판단하는 일보다, 잘 아는 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이 오차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를 성찰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곧 인격자다. 좋은 인격자란 그리 어려운 길도 아니다.

‘묵묵히 자기 분야만큼은 충실히 해내는 것’, ‘자기의 분수에 맞게 생활하기’, ‘남의 단점을 말하거나 공격하지 않기’, ‘남의 행복 인정하기’ 등을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참됨과 거짓됨을 살피는 것보다 나 자신을 성찰해 수양하며 살아간다면, 스스로 남을 판단할 노력도 필요 없이 좋은 사람들은 저절로 주변으로부터 모여들 수밖에 없다. 향기 있는 꽃이 벌들을 부르는 법이다. 

만일 내가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은 나쁜 사람들의 탓도 있겠지만, 내가 나쁜 마음으로 살아감으로 인해서 나쁜 사람들의 욕심에 휩싸인 결과로 나타나는 산물이다. 나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지 않고 남의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을 말한다.

남만을 바라보고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남의 행복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은 내 인생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판단해야만 하는 직업이 아닌 이상, 더 이상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습관을 내려놓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대인관계의 성패가 달려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실수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심하게 다툴 수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과 용서다. 내 실수를 인정하는 마음, 남의 실수를 포용하는 마음, 다시금 반성하는 마음, 남의 권익을 보장하고 양보하는 마음, 지금 이대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남의 마음을 살피고 판단하는 습관을 내려놓고, 나의 내면을 살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한다면, 어느 곳에서든, 그 누구와 만나더라도 아름다운 공존을 이뤄낼 수 있는 훌륭하고 원만한 대인관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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