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인도의 또 다른 땅 고아

해변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고아 주. 이 고아 주에서는 어느 해변에 머무느냐가 여행자들의 관건이다. 밤에 술과 음주가무를 즐기려는 여행자는 북쪽 아람볼이 좋고 조용한 휴양지를 찾는 여행자는 베나울림이 잘 맞는다. 북쪽에 위치한 아람볼은 히피족들의 집산지로 러시아인들이 많이 머물러 유흥문화가 발달한 곳이고 아래 베나울림은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노년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우리는 베나울림을 택했다. 히피족들처럼 밤 문화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되니 조용히 바닷가의 정서를 느끼고 새우나 잔뜩 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오전에 베나울림에 도착해서 부엌이 달린 민박을 얻기 위해 카페에 배낭을 맡기고 마을을 돌아보았다. 2월 초순, 좋은 계절에 속하는 고아지만 한낮의 내려 쬐는 햇살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한나절을 돌아다녔지만 현지인들과 알콩달콩 살아보겠다는 꿈, 우리가 원하는 민박집을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쩌다 한 두 집 부엌이 달린 집을 세 놓았지만 너무 지저분해 청소하느라 진을 뺄 것 같아 포기하고 결국 영업용 게스트 하우스를 얻었다.

어딜 가나 가장 어려운 것이 방을 구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 선택을 할 것인가. 쾌적하고 편안한 방을 우선 조건으로 하면서도 늘 적절한 가격을 무시할 수가 없다.

고생 끝에 우리가 선택한 방은 가격에 비해 좋은 조건이었다. 방도 넓고 책상도 두개나 있었고 살림살이는 없지만 부엌공간이 제대로 구성된 집이다. 물론 따뜻한 온수도 잘 나왔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집의 가장 좋은 점은 아래층에 있는 사비오 레스토랑이었다. 여럿이 동업한다는 주인들도, 종업원들도 모두 네팔인인 이들은 고아주의 성수기인 6개월 동안만 임대를 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비수기가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 레스토랑에서 한국 김치를 담아 내놓았고 무엇보다 인도에서 먹어본 난 중에 가장 맛있는 난을 매일 저녁에 먹을 수 있었다. 탄도리에 굽는 난은 물론 네팔인 쿠마르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그 맛이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비결은 반죽이었다. 보통 아무 맛도 나지 않게 반죽해 커리가 있어야만 먹을 수 있게 굽는 인도식 난에 소금과 설탕, 우유를 적당히 섞어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맛을 낸 것이다.

나는 10루피 하는 난 한 장과 고아 주가 관세지역인 덕분에 다른 곳에서 비싸 못 먹어본 맥주 한 병을 시키면 그것이 저녁식사였다.

저녁에 장작불을 피워 그 위에서 익혀내는 탄도리 요리에는 피자와 치킨도 있었다. 테리는 난보다는 탄도리에서 구워내는 피자나 치킨요리를 좋아 했다. 테리는 탄도리 음식을 시켜놓고 틈만 나면 탄도리 주변으로가 쿠마르가 요리하는것을 귀찮게 했다. 모든 게 신기한 테리는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위에 기다란 쇠막대 끝에 달린 쇠판위에서 피자나 난이 구워지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그러다 바람 때문에 불길이 역류해 머리를 그을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테리를 제재하느라 몇 차례 탄도리 주변으로 가 어깨너머로 난을 만들고 있는 네팔인의 손을 보곤 했다. 밀가루 반죽 통에서 한주먹 반죽을 떼어내 밀대로 미는 그의 손을 보았다. 어찌나 손이 투박하고 더러웠던지. 음식을 만드는 손 같지가 않았다. 나는 그의 손을 더 두고 보기가 민망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곁에 있는 장작가마를 보았다. 가마의 특성상 주방과 떨어진 마당 한쪽에 따로 조리대가 있고 그 곁에 흙벽돌로 지은 장작가마가 있었다. 손이 유난히 더러운 청년이 담당하는 주방인 셈이다. 가마 깊숙한 곳에서 붉게 장작이 타고 있었다.

얼마 후 나는 그 청년의 손이 더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음식을 하는 사람이면서도 더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음식을 만들면서 불속에 장작을 넣고 쉼 없이 불 조절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에는 재가 까맣게 얹혀 있고 얼굴이며 드러난 팔뚝에는 숯검정이 여기저기 묻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무를 만지던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고 피자위에 고명을 얹고.

우리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 그는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바쁜 손을 놀리면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기쁜 듯 그는 틈틈이 조리대 주변에서 귀찮게 하는 테리를 향해 순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모습이 어쩜 그렇게 순박할 수가 있을까. 덥수룩한 머리, 숯검댕이가 된 옷, 투박하고 더러운 손으로 만드는 난은 여전히 맛있었다.

우리는 베나울림 바닷가에서 3주를 머물렀다. 어느 곳에서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여행지는 없었다. 떠날 것을 생각하면 늘 아쉬었다. 이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목적지의 기차표를 예약해 놓고 나면 무엇이 가장 아쉬운지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끝없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래백사장도, 수평선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과 하얀 파도도, 영화배우 만큼이나 잘생긴 바닷가 레스토랑의 호객꾼도 아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었던 사비오의 난과 그것을 만들던 투박한 네팔 청년의 순박하고 더러운 손이었다. 그 난과 난을 만드는 청년의 손과 이별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견딜 수 없었다. 네팔인들은 4월이면 식당을 정리해 네팔로 돌아갔다 다시 10월에 돌아와 식당 문을 열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신유목민인 셈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했던 그 옛날 유목민들처럼, 돈을 벌기위해 성수기를 찾아 이동하는 현대판 유목민이다. 가족들을 고향에 두고 오직 돈을 벌기위해 낯선 곳에서 새우잠을 자며 한해의 절반을 견디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돌아갈까.

한 장의 난에 (10루피, 한화 25원) 맥주 한 병으로 한 끼의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손님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고, 고작 열 서너 테이블을 다 채운다 해도 그날의 매상은 뻔하다.

고향을 떠나 고생하는 만큼 큰 돈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는 고향에 남은 가족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할 터. 그들의 희망일수밖에 없다.

그들은 늘 친절하고 따뜻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겠지만 그것에 집착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누구에게나 순박하게 웃어보였다. 그들의 친절을 잊을 수 없고 탄도리 담당 청년의 지저분한 손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손처럼 순하게, 그가 피워내는 장작불처럼 뜨겁게 살수 있다면, 더 발랄 게 없을 것 같았던 고아다.

오늘은 아니겠지 하며 하루하루 떠날 날을 미루다, 이별하는 것이 두려워 네팔 청년과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한 곳이 고아 베나울림이다. 그래서 일까. 청년의 순박한 미소와 더러운 손과 그 손이 만들어낸 난이 너무 아쉽고 그립다. 왜 우리는 떠나고 난 후에야 사람 관계의 소중함이나 그리움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야속하기만 하다. <끝>

글·사진=김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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