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조만간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설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붉게 물든 단풍잎을 보며 등산도 즐기고 문학도들처럼 날씨에 취해 감상에 젖어들지만 필자와 같은 소방관들은 화재발생으로 인한 출동 증가와 각종 화재예방업무 등으로 어느 때보다 긴장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안전의식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12년 전인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에서 발생한 호프집 화재참사가 생각난다. 상가건물 지하 1층 노래방 내부수리 중 불꽃이 시너통에 옮겨 붙으며 건물 2, 3층으로 번진 화재로, 소방관들이 30분도 되지 않아 화재를 진압했지만 건물 안에 있던 50여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호프집의 구조상 출입구가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막혀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영업주가 화재 발생 후 손님들이 계산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까봐 탈출통로를 막아버려 50여명이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 후에도 2002년 군산 유흥주점 화재 등으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기존 영업 중인 노래방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다중이용업소 전 대상에 피난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관계법령을 제정했다.

따라서 현재 모든 다중이용업소에는 비상구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구가 유사시 인명을 살리는 통로로 사용될 수 있을지 현직 소방관으로 의문이 든다. 2009년 1월에 발생한 부산 영도구 상하이 노래주점 화재의 경우 비상구가 완비된 업소였지만 화재발생 후 종업원들이 제대로 손님들을 대피유도하지 못해 고작 30여평 밖에 되지 않은 업소에서 8명의 고귀한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다중이용업소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영업 중 화재 등 재난발생시 생명·신체·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말한다. 문화수준의 발달로 이러한 다중이용업소 내 인테리어와 서비스는 몇 년 전과 비교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영업주들의 안전의식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영업장에는 손님들의 도주를 막고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는 이유로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영업장 안에 물건을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비상통로에 쌓아두고 있는 곳이 허다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은 알아도 생명과 재산을 훔쳐가는 불 도둑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비상구는 유사시 사람을 살리는 통로이다. 비상구를 폐쇄하거나 장애물을 적재하는 행위는 살인미수행위와 다를 바 없다. 영업주들은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비상구를 열고 피난 시 장애가 될 물건이 있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또 손님이 올 때마다 비상구의 위치를 안내해주고 화재가 발생하면 손님들이 무사히 밖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 업소를 찾은 시민들도 화재에 대비해 업소 입구에 비치된 피난안내도를 유심히 읽어보고 화재시 어떻게 대피할지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안전은 실천에서 찾아온다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해 소방관들이 매월 정기적으로 다중이용업소를 방문해 피난·방화시설 단속 및 계도활동 등 모든 행정역량을 쏟아 붓고 있지만 영업주의 안전의식 미흡으로 현재도 위험요소가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방관들의 노력만으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을 지키는 건 역부족이다. 다중이용업소 영업주들도 스스로 자신의 업소는 자신이 지켜야겠다는 안전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전은 실천에서 찾아온다. 우리 모두 비상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내 주변에 화재 등의 위험요소를 찾아 제거하고 예방하자. 아무쪼록 다가올 겨울에도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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