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황량한 돌무더기 함피

뱅갈로르에서 밤기차를 타고 호스펫에 아침에 도착했다. 호스펫은 작은 소도시처럼 조용했다. 함피를 찾는 누구나 이 호스펫을 거치지만 호스펫이 목적지가 되지는 않았다. 함피로 가는 이정표역할을 하는 도시답게 호스펫은 그저 길을 내주는 도시처럼 다소곳해 보였다.  이 작은 도시 호스펫을 지나 함피 방향의 이정표에 눈을 정지하고 그것을 쫓았다. 한적하고 정감 있는 인도의 전형적인 농촌 길을 40분정도 달렸던가. 커다란 고개가 마치 외부의 손님을 어렵게 맞이하듯 버티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어렵게 올라간 오토릭샤는 다음에는 내리막길이었다. 오토릭샤는 엔진을 끄고 그 반동으로 내려갔다. 내리막길로 향하자 멀리 커다란 템플이 보였고 함피라고 말하는 고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를 찾기 위해 카페에 짐을 내려놓았다. 어디든 목적지에 밤에 도착하지 않고 아침에 도착하면 여유가 있고 기분이 좋았다. 함피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 낮이 있다는 안도감에 편안하게 앉아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즐겼다. 옆자리에 한 외국인 여자가 혼자 아침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그 여인의 도움을 받기위해 말을 걸었다.  “좋은 게스트 하우스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캐나다 여인이었는데 자신이 묵는 방이 괜찮은 편인데 오늘 체크아웃하니 그 방을 쓰고 싶으면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짐을 지키기 위해 카페에 남고 테리는 그녀를 따라 그녀가 묵는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한참 후 테리가 돌아왔다. 캐나다 여인이 묵는 방도 가 보았고 그 외에 다른 몇 곳의 게스트 하우스를 들렸지만 그 집이 가장 맘에 든다는 것이다. 더욱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곧 6일 후면 함피에 500주년 왕조를 기념하는 큰 축제가 벌어진단다. 경찰인원만 1만명이 이곳 함피 게스트 하우스에 나눠 묵어야 하기 때문에 축제가 시작되는 날에는 방을 비워줘야 한다. 함피의 모든 게스트 하우스가 방의 절반은 오래전에 이미 예약을 한 고객에게 내줘야 하고 절반은 경찰들에게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값이 예상했던 것 보다 비싼 것은 물론이고 돈이 있어도 방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큰 축제를 앞두고 함피를 찾은 셈이다.

2주 이상 머물겠다는 마음을 접고 축제 당일까지 6일간만 머무는 조건으로 우리는 캐나다 여인이 묵던 방을 체크인 했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테리가 좋아할만 했다. 집 뒤쪽은 커다란 돌무더기의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리였다. 바나나 잎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만든 방갈로 형태에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에는 네팔인들이 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서양의 히피들이 둘러 앉아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가든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처럼 젊은 여행자들이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집이었다. 독립된 방갈로 형태의 바나나 잎으로 만든 집은 중간 중간 구멍이 뚫려 밖이 훤히 보였고 그 사이로 곤충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것은 당연했다. 불을 켜고 방안에 있을 수가 없으니 레스토랑으로 나가야 하고 그곳에서 히피들의 연주를 밤늦도록 들어줘야 했다. 테리는 본인이 미성년자라는 나이 때문에 청년들과 함께 가무를 즐기는 분위기에 합류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반대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의 무대서 함께 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모두 그 나이에 걸려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모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속에서는 어떤 신명이 요동치면서도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 발산 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늘 그랬다. 세계의 젊은이들과 어깨라도 덩실거리며 흔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앞에 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먼발치에서 그들의 흥겨움에 감동하며 구경꾼으로 머물러 있을 뿐 앞으로 한발자국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병이려니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말았다. 그 대신 우리는 낮에 레스토랑 네팔인 매니저 아들 아카이와 놀아주는 즐거움을 얻었다.

아카이는 돌을 막 지낸 아이인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테리는 아카이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아이가 엄마를 찾아 보챌 때까지 끝도 없이 놀고 싶어 했다.

축제날이 다가오자 함피는 축제를 준비하는 일손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했다. 가는 곳마다 템플에는 야간조명을 설치하기 위한 팀들이 전구와 전선을 연결하느라 바빴고 템플 광장 곳곳에는 가설무대를 설치하는 일손들이 바빴다. 공사하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테리는 “정말 대책이 없군”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읖조린다. 테리가 걱정하는 것은 축제를 한번 할 때마다 세계의 문화유산이라는 많은 유적지들이 얼마나 많이 훼손될까하는 것이다. 공사를 하는 인도인들은 템플이 얼마나 훼손될지는 안중에도 없다. 여기저기 박고 두드리고…. 빠른 시간 내에 조명이나 무대를 설치해야 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래된 종교유적 템플을 상가로 쓰고 그 안을 집으로 사용하고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그런 모습들은 인도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것을 생각하면, 문화유산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직도 더 절실한 많은 거리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함피의 축제는 외국인들을 위한 축제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왕국을 이루어 살던 함피 주변 주민들을 위한 축제였다. 축제시작일 며칠 전 부터 많은 인도인들이 함피로 몰려왔다. 그들에게 잠잘 곳을 내주고 빨리 떠나야 할 사람은 우리같은 외국 관광객들이었다. 단체로 온 인도인들은 함피 들판에 천막을 치고 솥을 설치해 불을 때 음식을 만들어 먹어가며 축제를 기다렸다.

축제를 맞이하기 위해 함피에 온 사람들은 제일먼저 함피의 젖줄인 강가로 가 목욕해 자신을 정화하는 의식을 가졌다. 돌무더기가 장관을 이루는 강가에 인도인들이 목욕을 하고 입고 있던 옷을 빨아 그 자리에서 말리는 풍경은 함피의 다른 유적지를 바라보는 것보다 즐거웠다. 서쪽으로 지는 햇살을 등지고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 형제, 이웃, 자매 등 남녀노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물속에서 몸을 씻었다. 주름진 살갗, 불룩 나오거나 아래로 힘없이 늘어진 배. 그들에게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이 들어감의 누추함 따위는 걱정되지 않는 듯 했다. 몸을 씻은 다음에는 입고 입던 옷을 강물에 빤다.

강의 물을 신성시하여 그곳에 자신을 정화하고 신의 축복을 받는 것인데, 여기에 비누를 사용해 옷을 빠는 것 역시 인도인들의 어쩔 수 없는 생활이다. 그들 앞에서 강의 환경을 얘기하고 오염이라는 말을 얘기한다는 게 어불성설일지 모르겠다. 얇은 천으로 된 인도인들의 옷은 말리는데 빨래 줄도 필요 없다.

바위에 펼쳐 널어놓거나, 손을 뻗어 펼쳐 천 끝을 잡고 잠깐 들고 있으면 5분, 10분이면 빨래가 마른다. 강한 햇빛과 바람 때문이다. 한 지긋한 노인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헌옷을 손수 빨고 있다. 그 손길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대부분의 인도 가정에서는 집안일은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주로 바깥일을 담당한다. 남자들이 집안에서 빨래를 손수 할일이 흔치 않다. 강가에서 신의 축복을 받기위해 자신의 몸을 깨끗이 닦고 입고 있던 헌 옷을 자신의 손으로 빠는 인도의 남자들. 어쩌면 이 노인의 빨래는 아내의 일손을 덜기위한 빨래가 아니고 몸을 닦듯, 자신의 마음을 닦아 신의 축복을 받기위한 의식이며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돌무더기, 황량한 모래바람, 강한 햇빛과 바람.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함피다. 여기에 500년 전까지만 해도 번창했던 왕조의 왕궁 터와 몇 개의 크고 작은 템플, 이곳을 끝없이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합류해 도시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거대한 왕궁 터나 수 많은 템플, 돌무더기의 강가, 골목골목 예쁜 액세서리 가게. 많은 여행자들이 이 함피를 기억하고 좋아하지만 나는 강가에서 빨래 빠는 나이든 노인들의 손놀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손이 참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여자는 긴 천으로 된 사리(여자 옷) 한 장이, 남자 역시 긴 천으로 아랫도리를 해결하는 도티(남자 옷)가 평생 입는 옷이다. 인도인들 가정마다 옷장이 단출한 이유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옷이 필요 없다. 계절별 혹은 그날그날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우리들과 다르다. 몇 번 주물러 흐르는 물에 한두 번 헹구면 다 해결되는 얇은 천이나 빨래문화조차도 단출해 부럽다. 왠지 그들의 삶도 단출할 것 같다.

강물에 빠는 것이 어디 그들의 옷뿐일까. 빨래도 빨고 마음도 빠는 그들의 단절되지 않는 문화가 새삼 가슴 뭉클하게 했다. 

글·사진=김정애 논설위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