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도둑 이야기(4)
<문화가산책> 도둑 이야기(4)
  • 충청매일
  • 승인 2011.10.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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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 출두하는 조세형씨(연도미상·KBS 화면캡쳐)

조세형씨는 1980년대 초, 정권의 실세 측근이었던 신모라는 당시의 국회의원 집에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40억원어치 정도의 보석을 훔쳐 나온 적이 있는데 1982년 경찰에 검거된 후 조사과정에서 고관집 등에서 훔친 보석 1백수십억원어치가 나중에는 5억3천만원어치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피해액이 그처럼 줄어든 것은 수사관들이 상부로부터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피해액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시가 3억3천만원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나중에는 20만원짜리 싸구려 다이아가 됐더라고 밝혔다.

피해액을 그처럼 줄이고도 자신에게는 절도죄의 최고형이 7년임에도 징역 15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했다면서 이는 그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1982년 11월 검거돼 재판을 받던 중 1983년 4월 대낮에 법원 구치감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탈주를 감행해 또 한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탈옥후 5일만에 서울 장충동에서 시민의 제보로 출동한 경찰에 다시 붙잡혔다가 1998년 11월 16년만에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조씨는 출소 후 재소자들의 선교를 위해 ‘늘빛선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국의 교회를 돌며 간증활동을 하고 다녔다. 간증 활동중 16세 연하(실제는 22세 차이)의 여성 사업가 이모씨를 만나 2005년 5월 결혼했다. 늘그막에 아들도 하나 두었다. 그러다가 2000년 11월 선교활동을 명목으로 일본에 간후 도쿄에서 부유층 거주지역의 빈집에 들어갔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체포됐던 것이다.

인스턴트 명사의 서글픈 추락

조세형을 무료 변론했던 엄상익 변호사는 2000년 11월 조씨가 도쿄에서 절도행위를 하다 경찰의 총에 맞아 붙잡힌 뒤 일본에 가서 그를 면회했다. 

엄 변호사는 후일 그의 저서 ‘변호사와 연탄구루마’에서 ‘대도 조세형의 서글픈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면회 때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도대체 왜?“

내가 원망 섞인 어조로 물었다. 그의 재범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범죄자의 참회를 모두 부인하게 하는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따뜻한 마음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짙은 상처를 남겼다.

“세콤 테스트를 하려고…”

그의 궁색한 답변이었다.

“그동안 도와준 분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죠?”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분들을 떠올리면 진땀이 나요. 너무 너무 미안하고…”

도벽이란 무서운 질병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쾌감에 중독되면 끊기 힘든 마약같은 것이었다. 부유한 집 아이들의 장난성 도둑질이나 그럴 듯한 사모님들의 절도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조세형의 절도는 차라리 이해가 갔다.

그는 꼬마거지에서 구멍가게의 두부를 훔치는 도둑 인생으로 시작했다. 사슴을 잡아먹는 호랑이를 탓할 수 없듯이. 도둑질은 그의 생존 방법이기도 했다. 석방된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거기에 박힌 나쁜 인자들을 빼내는 것이었다. 잠재된 도벽의 균이 세상의 강한 조명에 억눌린채 갇혀 있다가 일본이라는 익명성 속에서 되살아 난 것 같았다.

엄 변호사는 감옥 안에서 단단했던 조씨의 신앙이 출옥 후 그가 갑자기 유명인사로 행세하게 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체포된) 조세형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에 자신의 범죄가 알려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는 성자이자 사회명사였다. (1998년) 석방된 다음날부터 각 교회는 경쟁하듯 그를 단위에 세웠다. ‘할렐루야’를 부르짖는 신도들 앞에서 그는 단번에 성자가 되었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그는 인스턴트 명사가 되었다. 그를 보려는 팬들이 줄을 섰다.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대도 조세형을 자신의 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싶어했다. 15년 동안 감옥 안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정금같이 단련되었던 그의 신앙은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신앙은 실종됐다. 간증을 하는 그에게서 나는 새가 없는 황금 새장만 보았다. 그는 회장이 되고 싶어 했고, 미국의 말콤 엑스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나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본 유일한 목격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영원한 우정을 나누자고 내게 말했던 추억을 씁쓸히 떠올리며 나는 그를 떠나보냈다. 극단의 고통으로 그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던 사탄은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어 세상의 부귀영화로 그를 유혹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파멸시켰다.”

경찰 관계자들은 그가 부인과 헤어지고(2009년에 이혼) 경제사정도 어려워지면서 범죄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73세의 나이에 또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된 조세형씨의 인생을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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