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여자분이 일회성 상담을 요청해왔다.  

“제가 최근 자살시도를 했어요.”

“왜 그랬나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서 좋지 않은 약물을 먹었어요.”

나는 그녀와 좀 더 상담을 해 본 결과, 그녀가 그저 형식적인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녀의 자살시도는 그녀 자신이 만든 ‘자기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대해서 그럴듯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 만든 마음의 짐을 상쇄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또 주변에게 자기의 존재감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알리려는 좋지 못한 시도였다.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처럼, 그렇게 시도하다가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기에 철저히 경계해야 할 점들을 강하게 일러줬다.

모든 것을 자기 식대로 판단하고, 자기식대로 결론을 내리는 그녀는 결국 그녀 자신이 가장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본인이 왜 초라하다고 생각합니까?”

“남들은 좋은 옷 입고, 넓은 집에서 사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남들이 나 보다 잘 산다고 내가 초라함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내 분수에 맞지 않은 허영심과 남들의 부유함과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이 행복하기도 어려우며, 그 누구와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살펴서 알맞게 처신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할 때에 마음이 안정되고 좋은 대인관계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마음을 바로 잡는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잘못된 심리 구조에 빠질 수 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좋은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 누가 홀로서 살아가고자 하겠는가. 여러 유형의 대인관계를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며 친숙하게 지내지 못하면 혼자만의 엉뚱한 상상에 빠져버릴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라도 사람과 사람이 충분히 접촉하고, 교류하고 사랑함이 필요하며, 그렇게 살아갈 때,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논어(論語)에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제시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익이 되는 세 벗이 있으니, 정직한 사람과 벗하고, 성실한 사람과 벗하고, 박학다식한 사람과 벗하면 이익이 된다. 손해가 되는 세 벗이 있으니, 치우친 사람과 벗하고, 잘난 체 사는 사람과 벗하며, 아첨하는 사람과 벗하면 손해가 된다.’

수천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러한 논어의 가르침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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