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인도기행

오래전 영화 ‘사랑과 영혼’은 그 이야기가 허구적이면서도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진한 감동을 줘 흥행에 성공했다.

여자 주인공 데미무어(몰리 역)가 물레를 돌리고 그 뒤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샘 역)가 안고 있는 장면은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이어서 신조차 질투를 한 것일까. 자신 때문에 죽게 된 몰리에 대한 죄책감과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 몸부림치는 샘의 고통.

한 때 많은 여성들이 몰리의 물레 돌리는 장면 때문에 도자기 공방을 많이 찾고 있다는 보도가 있을 만큼 영화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 역시 그 영화 이후 물레 돌리는 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졌고 시도해 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물레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흙덩이가 어엿한 그릇이 되는 과정. 그것은 숙련된 시간이 필요했다. 물레 앞에 앉아 흙을 올려놓은 후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흔들림이나 실수는 흙이 그릇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레 앞에 앉는 일이 무의미한 것이다.

‘사랑과 영혼’에서 몰리와 샘의 그림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손이 어떤 동작을 취할 때 그토록 진중한 모습을 본적이 없다. 오로빌 근교에 있는 마을 코타카라이에서 만난 토공 비라사미의 손이다.

어느 날 집안을 청소해주는 여인 비말라가 자신의 집에 초대해 주었다.

평상시에 비말라와 친하게 지내며 밥도 같이 해먹고 하던 우정의 결과였다.

우리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비말라가 살고 있는 마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4키로 정도 거리에 있는 코타카라이라는 곳이다.

오로빌 사람들은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빌리지라 부르는데, 오로빌 주변에는 이 빌리지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곳 주민들과 상부상조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도 오로빌리언들의 과제여서 오로빌에서 인력이 필요하면 당연히 이들을 고용해야 한다. 비말라도 그중 한명이다.

비말라가 살고 있는 마을은 전형적인 인도 농촌마을이다. 오로빌과 경계에 있으면서도 오로빌과는 사뭇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작고 허름한 학교, 아이를 안고 와 재봉틀을 배우는 마을 여자들, 나무 그늘 아래서 한가롭게 앉아 있는 노인들, 일을 하는 남자들. 모든 풍경이 한국의 여느 농촌풍경과 다르지 않다.

작지만 시멘트 슬라브 지붕의 비말라 집은 생각보다 그렇게 초라하지 않았다. LG 텔레비전과 냉장고도 있었다. 비말라의 아이들과 남편, 시어머니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아들은 윈숭이처럼 코코넛 나무를 타고 올라가 코코넛을 따 주었고 어린 딸들은 우리 곁에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맘껏 드러냈다. 음식솜씨가 좋은 비말라는 남인도 특유의 음식을 만들어 우리 앞에 차렸다. 이들리와 코코넛으로 만든 소스가 일품이었다.

과식 했다 싶을 만큼 밥을 먹고 마을을 구경하게 된 우리에게 비말라는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지, 자신의 시누이의 남편이 일하는 작업장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뭘까 하고 따라 갔더니 토기를 만드는 공방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가마였다.

우리나라 도자기 가마와 비슷하지만 작고 간단했다. 장작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가마 내부는 벽돌로 쌓았는데 그 안에 칸칸이 토기를 얹어 굽는 것이다. 마당 한쪽에는 흙을 곱게 거르는 우물 같은 큰 통이 있고, 이곳에서 한 사람이 체에 흙 거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고운 흙만을 걸러 말리고 다시 물에 가라앉혔다 말리고를 반복하면 토기 만드는 흙이 된단다.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물레를 돌리고 있는 비라사미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보기에도 허접하기 그지없어 과연 토기가 만들어질까 하는 물레위에 흙을 한 덩이 얹어 놓고 찰나처럼 짧은 시간 동안 흙에 집중하는 그의 손길.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경지였다. 너무나 진중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흙덩이가 원통이 되고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진지한 모습으로 흙과 자신의 손에 몰두하고 있었다.

손을 보았다.

마디가 굵고 억세 보였지만 물레가 돌아가는 흙덩이 위에서 그의 손은 너무나 곱고 섬세하고 진중해 보였다.

그의 진중한 손이 마치 그의 사람됨이거나 그의 성품인 것처럼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떤 예고도 없이 비말라 손에 이끌려 불쑥 찾아간 우리는 분명 불청객임에 틀림없었다. 함께 작업장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나 그들의 아버지 비라사미나 불청객의 방문에 동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오히려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라 한 쪽은 우리였다.

문득 헬렌 켈러의 손이 떠오른다.

“차가운 물줄기가 내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선생님은 내 다른 손에‘물’이라고 썼다. 바로 그 순간 번개같이 되살아난 정신이 내 몸을 타고 흘렀고 언어의 비밀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물’이 지금 내 손을 타고 흐르는 아주 멋진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생생한 단어는 나의 영혼을 깨웠다.”

헬렌 켈러가 지은 책 ‘어둠에서의 탈출’에 등장하는 이 글은 헬렌 켈러가 손을 통해 비로소 사물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 감동적인 상황이다.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말도 할 수 없는 헬렌 켈러에게는 손이 있었다.

손이 느끼는 감촉으로 글을 배우고 사물을 느끼고 마음을 표현하고. 손의 촉각으로 모든 걸 극복한 그녀가 비라사미의 손에 오버랩 되었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비라사미의 손은 오직 토기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이야기 한다.

마치 그는 눈도 멀고 귀도 먼 사람처럼 손의 촉각에만 의존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토기들이 그의 삶이고 그의 기쁨이고 그의 슬픔이고 그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손과 흙과 물레가 일체가 되는 순간, 그것이 비라사미였다.

그날 테리와 나는 동시에 비라사미에게 빠져 들었다. 비라사미는 정중하고 욕심없는 사람이었다. 외국 여행자가 자신의 작업실에 왔으면 덤터기를 씌울 법한데, 너무나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는 몇 개의 토기를 구입했다.

그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면서도 그는 그것조차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평생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한 장인다운 면모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대체 많은 사람들이 다 갖고 있는 욕심은 어디에 쟁여 두었는지. 온 가족이 대를 이어 토기 만드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버려보고 싶었던 적은 없는지. 그런 것들이 못내 궁금했지만 그저 우리는 더 이상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도리다 싶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작업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수한 토기들. 비라사미가 하는 일은 그것들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토기를 대신할 공산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당연할 터. 보통사람이라면 그 반복된 일이 지루하거나 권태롭거나, 혹은 가난을 구제해주지 못하거나 해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쉽게 저버리지 않고 그것 자체를 삶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흙을 만지는 일에 그토록 몰두 할 수 있다면, 그토록 진중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이 얼마나 진실하고 선할까. 그런 생각을 하루 종일 한 날이었다. 비라사미가 만드는 토기는 주로 향꽂이, 촛대, 등잔, 꽃병 같은 것들이다.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그릇으로 사용하는 도기는 만들 수 없다. 비라사미의 토기들은 표면이 한국의 토기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만큼 흙을 곱게 걸러 고운 입자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토기들을 다시 본 것은 오로빌에 돌아와서 였다.

오로빌 관광객들을 위한 비지터센터 선물가게다. 비라사미 작업장을 다녀 온 후에야 그것과 같은 토기가 판매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 것인데, 우리는 거기서 판매되는 가격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비라사미 작업장에서 산 가격보다 열배나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인도를 찾는 관광객과 인도 현지인들 사이의 거리인 모양이다.

비라사미 온가족이 평생을 매달려 하는 일이다. 토기가 싸고 비싸고를 떠나 너무나 터무니 없는 유통마진이나 줄여 생산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비라사미의 손이 참 쓸쓸하게 떠올랐다.

글·사진=김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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