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도둑 이야기 (1)
<문화가산책> 도둑 이야기 (1)
  • 충청매일
  • 승인 2011.09.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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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 다이아몬드(왼쪽) 구법여행을 떠나는 현장.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지난날 서울의 부자동네에서는 도둑에게 금품을 털려도 대개는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도둑에게 털린 금품이 떳떳하지 못한 돈이나 물품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기 집의 내부 사정이 경찰 등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정작 주인은 도둑 맞은 후에 신고를 안했지만, 도둑이 장물을 처분하기위해 돌아다니다 붙잡혀서 도둑이 들었던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도 있다. 이 경우에 당황하는 쪽은 집주인이다. 대개 도둑 맞은 액수가 별거 아니어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런데 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주인은 적게 털렸다고 하고 도둑은 크게 털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이 과거에 종종 있었다.

1970~80년대에 재벌회장, 국회의원, 전직장관집 등만 골라 털었다는 대도(大盜) 조세형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훔친 귀금속의 액수를 피해자들이 축소해 신고했다고 주장해 논란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말로만 떠돌던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존재도 조씨에 의해 드러났다.

그가 훔친 귀금속 가운데 5.75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었던 것이다. 털린 사람이 쉬쉬하던 것이었다.

당시 그는 현장에서는 잡힌 적이 없고 장물처리 과정에서 꼬리가 잡혔었다. 1990년대말 한때 기독교인이 돼 전국에 간증을 하러 다니기도 했고, 유명 경비업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 뒤 2000년 11월 일본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서 대낮에 빈집털이를 하다가 붙잡혀 대도로서의 스타일을 구겼다. 귀국 후 국내에서도 절도, 장물아비짓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도둑이 훔친 공주의 금베개

도둑의 장물로 인해 사랑이 파탄 났을 뿐 아니라 처참하게 목숨까지 잃은 기막힌 사례가 과거 역사 속에 있었다.

지금부터 약 1300여년전인 서기 648년,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도둑 한명이 사직(司直·지금의 경찰에 해당)에 붙잡혔다.

이 도둑이 훔친 물건 중에는 금은으로 장식된 호사스러운 여자의 베개가 있었다. 엄중한 취조가 이뤄졌다. 도둑은 그 베개를 홍복사(절 이름)의 어떤 중의 방에서 훔쳤다고 자백했다.

조사 결과 그 방은 젊은 석학승인 변기(辯機)의 방임이 밝혀졌다. 변기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도 뛰어난 학식으로 현장(玄  ·중국 당나라의 고승, 삼장법사로도 불림, 602~664)이 천축국(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번역에 참여한 당대의 유명한 중이었다. 현장은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불교 원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을 비롯, 당나라 서쪽의 138개국을 돌아 16년만에 장안으로 귀국했는데, 현장의 구법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현장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집필한 이가 변기로 알려져 있다. 훗날 이 여행을 모티브로 해 지금으로 치면 판타지 소설이 쓰여졌는데, 그것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하는 중국의 4대 기서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西遊記)다.

변기는 어사대(御史臺·지금의 검찰에 해당)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수사관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으로 그 베개가 천자(당태종 이세민·李世民, 598~649)의 총애하는 딸인 고양공주의 것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로 황궁 안은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시말은 이러했다.

고양공주는 고집이 세고 교만한 성격이었는데, 억지로 결혼한 공신 방현령의 둘째 아들 방유애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장안 근교의 암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면학에 힘쓰고 있던 젊은 학승 변기와 마주치게 됐다. 덜렁대는 남편과 달리 준수한 용모에 명석해 보이는 학승 변기에게 공주는 한눈에 빠져들었다.

적극적이었던 공주는 남편인 유애에게 두 사람의 젊고 아름다운 시녀를 보내 자신을 대신해 시중을 들게 하고 몰래 변기를 만나러 다녔다. 남편 유애는 부인의 이러한 불륜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주의 밀애를 호위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관계가 8~9년간 이어지다가 어느 날 변기가 현장의 대당서역기 집필과 천축경전 번역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동안 외부와 단절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고양공주와의 밀회도 어렵게 됐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공주는 변기에게 자신이 베고 자던 금은으로 장식된 베개를 주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이 베개를 저로 알고 밤마다 꼭 베고 주무세요”하면서….   

이정식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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