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인도기행-손의 재발견 ① 프롤로그

▲ 불가사의한 건축물 타지마할은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아내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타지마할은 22년 간 연 20만명이 동원돼 건축된 것으로 순백의 대리석과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어우러져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을 내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2011년 새해에 찾은 타지마할에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손에서 삶의 흔적을 보다… 생인손에 대한 상처, 손에 집착하다

 

 

테리(여행지에서 부른 딸아이 이름)의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학 대신 그 기간 동안 삶을 여행자처럼 살아보자고 꼬드겼다. 테리는 너무 쉽게 넘어 왔다. 둘 다 떠돌이 기질이 농후했던 것일까. 우리는 의기투합해 삶에 있어 한 부분을 여행자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오래전 여행을 할 때 여기 찍고, 저기 찍으며 유명한 유적지를 필름 돌려보듯 보고 돌아서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 보다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일상을 사는 것처럼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인도와 그 주변국으로 정했다. 왜 하필 인도 였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5년 전 인도 여행에 대한 여운, 혹은 아쉬움이 인도로 발길을 향하도록 했고, 그 다음은 저렴한 물가, 지역마다 다른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 남부 타밀나두 주에 있는 오로빌 공동체에 대한 호기심 등이었다.

우리는 지난 2008년 12월 말경 인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행자에게 일정이라는 것은 무의미 했다. 어디든 우리가 원하는, 발길 닿는 곳에 우리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겠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처음 도착지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있는 오로빌 공동체다. 오로빌은 우리의 기대만큼 매력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4개월을 머물렀고, 같은 타밀나두 주에 있는 띠루반나 마라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5개월을 지냈다.

이후 함피, 뭄바이, 아우랑가바드, 카주라호, 바라나시, 캘커타, 델리, 마날리 등을 거쳐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북인도 다람살라까지 이동하며 때로는 한번 간곳이 아쉬워 세 번을 들리기도 하고. 어느새 훌쩍 시간이 흘러 2년이 넘었다. 그사이 비자 때문에 한국에 한번 다녀갔고 6개월 비자를 받아 다시 인도로, 그 다음에는 스리랑카에서, 다음은 태국에서 머물며 비자를 받아 인도로 향했다.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네 번에 걸쳐 타면서 그래도 인도로 가야하니 하고 자신에게 물으면 그래, 그래도 인도로 가야해라고 답하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 망상에 빠져 보거나, 마냥 숲속을 걸으며 지는 노을을 보거나,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다 허름한 찻집에 앉아 이국적인 음악을 듣거나, 낯선 거리를 여기 저기 배회하며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보거나,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현지인들과 정을 나누고, 한국 여행자를 만나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보는 일들. 이런 것은 여기저기 급하게 이동하는 바쁜 여행자들이 누려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 한가롭고 여유자적함 속에서 늘 보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의 손이다. 밥을 먹는 손, 악기를 연주하는 손, 구걸하는 손, 일하는 손, 춤을 추는 손, 노름 하는 손…. 무수한 손들이 내 의식 가득 찼다. 그만큼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본 것이 사람의 손이다.

언젠가 부터 사람의 손에 관심이 많았고 그 지속된 관심은 손과 관련된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어서 여행과 관련된 글을 남겨야 한다면 그것이 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처음 보면 얼굴보다 손이 먼저 보인다. 그 사람의 손에 상처가 있는지, 손이 고운지 거친지, 무슨 흔적이 있는지. 이리저리 기를 쓰고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유년시절부터 있어온 손에 대한 깊고 깊은 콤플렉스가 원인이 아닐는지.

아마도 일곱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고향집 마당 울타리가 시멘트 담장이 아니고 측백나무 울타리였던 시절이다. 새마을 운동 영향으로 측백나무 울타리가 시멘트 담장으로 바뀐 것이 70년대 중반이었으니 그쯤으로 기억한다. 측백나무 울타리 사이의 개구멍으로 드나들며 이웃집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개구멍을 빠져 나가면 텃밭과 연결이 되는데, 우리는 그 텃밭 둔치에 앉아 나물도 캐고 흙도 만지며 놀곤 했다. 하루는 소꿉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밥상을 차리기 위해 돌로 풀잎을 찧었다. 풀잎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것일까. 풀잎을 찧다 왼쪽 엄지손가락을 찧고 말았다.

당시 보통의 시골아이들이 그랬던 것 처럼 어디 상처가 생기면 자연치유의 힘을 믿었다.

그 힘은 대단한 것이었으니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닌, 손가락의 상처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어쩌면 평생을 달고 살게 될 애물단지가 될 모양이다. 왼손 엄지손가락에 균이 들어갔고 그 균은 생인손을 만들어 엄지손톱의 모양을 일그러트려 놓았다. 손톱이 자라 새 손톱이 나면 일그러진 손톱은 없어지겠지 하는 마음이 고등학교시절까지 지속되었다.

왼쪽 엄지손톱이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아 야속했다. 매일 손톱을 바라보다 너무 집착해 바라보면 손톱이 자라지 않을 것 같아 다시 외면한척 하기를 수년. 언젠가 손톱은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손톱의 뿌리가 이미 변형되어 일그러진 채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안다. 왼손 엄지손톱은 결코 매끄러운 손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 아직까지 손에 관한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 앞에 서면 왼손 엄지손가락을 보이기 싫어 어떤 방법으로든 감추고 본다. 상대방의 얼굴보다 손을 먼저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타인의 손에는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아니면 운 좋게 고운 손을 갖고 있는지. 늘 그것이 궁금하다. 내 손은 보이기 싫으면서 타인의 손은 기를 쓰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쩌다 나와 닮은 상처를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상처가 영원하다는 것을 확인 하는 기분이다. 그래 싫다. 오히려 상처 하나 없이 고운 손을 만났을 때가 더 반갑다. 특히 거친 일을 하면서 손이 고운 사람은 더 좋다. 흠집나지 않게 손을 잘 지켜준 고운 손들이 더 없이 고맙고 보기 좋다. 이렇게 손에 대한 집착은 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드는 상처가 되어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는 복병이 되었다.

나이 들어가며 생긴 변덕이라면 때로 못난 일그러진 손톱조차 감사하며 건강한 손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손을 많이 본 경험일까. 얼굴에서 보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진다. 마음이나 하는 일이나 성격이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읽혀진다.

한국에서 늘 만나던 이들이 아닌, 세상에 처음 보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무수한 손들. 손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고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무엇을 만들거나 동작을 취하고 있는 손, 늙어 주름진 손, 너무나 예쁜 아이의 손,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손, 조각으로 빚어진 손, 조용히 멈추어 있는 손 등.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손에 다양한 생각과 시선을 담아 바라볼 참이다.

어떤 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생각과 호기심으로 그들의 손으로 다가갈지. 그들의 손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손을 드러내어 줄지. 다 궁금하다. 서둘지 않고 느리게 여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기쁨이기를 바란다.

글·사진=김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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